과한 애정은 나를 시들게 한다.
24살 2월 대학을 졸업하고는 원하던 공부를 시작했는데, 1년 6개월의 시간이 꿈을 이루기에는 부족했는지 작고 여렸던 어린 자아에 큰 실망감을 주었다. 처음이었다. 노력으로 아무런 결과가 나지 않는 것이. 중고등학생때 하다 못해 대학 때까지만 해도 노력만 하면 뭐든 이뤄낼 것 같다며, 힘들지만 나를 혹사시키면서 수많은 눈물들을 흘려보내며, 그 시기들을 버텼다.
포기해야 하나란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에는 이뤄낼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보냈던 시기. 암흑 속에 있다며 한탄을 했지만 지나고 보니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열을 내며 빛을 내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면 우울하지도, 부모님께 모진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본인이 숨이 막힌다고 주변의 목을 조른 꼴이었다. 이때부터 자아에 숨통이 트이게 하기 위해 이런저런 실험을 많이 했다.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멍 때리면서 몇 시간을 앉아있기도 하고 또 날 선 감정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다 홍콩야자를 키우게 되었다.
당시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홍콩야자를 키웠는데, 초보 식집사였던 당시의 나는 자주 관심을 주고 영양제도 자주 주면 홍콩야자가 잘 자랄 줄 알았다. 하지만 애정과 반비례하게 홍콩야자는 시들시들 해지기 시작해다. 무조건 적인 애정이 때로는 상처 입히기도 하구나. 맹목적이었던 순수한 사랑이 때로는 아픔을 주고 잘 자라지 못하게 막는구나.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애를 쓴다고 뭐든 되는 세상이 아니었구나. 그저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렇게 믿고 싶었구나. 때론 독이 되는, 스스로를 잘 자라지 못하게 하는 노력도 있구나.
많은 사랑이. 애정이. 노력이. 독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순간에 스스로를 억압하던 태도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때 제일 먼저 했던 것이 강박적으로 쓰던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기억을 하고 싶어 쓰던 일기가 어느 순간 억지로 세상을 붙잡고 싶어서 의무적으로 쓰게 되던 행위가 되었다. 이후 날짜별로 있는 일기장을 사지 않고 무지노트를 샀다. 그냥 기록하고 싶은 대로 그 해를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러다 보니 조금 게을러진 것도 있지만 강박에 숨을 못 쉬는 지경에 이르렀던 내게 여유라는 것이 처음 생겼다. 필요에 의해서 캘린더나 스케줄러는 쓰지만 버거워할 정도의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이때부터 생긴 여유는 나를 조금씩 변화시켜 도전을 과거보다는 편하게 하는 마음을 가져다주었다.
나를 위해 지나치게 쏟아붓던 노력과 애정이 독이 됨이 알고 내려놓는 순간 여유가 찾아온다. 오랜 시간 강박에 시달렸다면 이 과정이 힘들 순 있겠으나. 강박이, 나를 향한 과한 애정이 숨을 못 쉬게 한다면 내려놓고 가벼워지자. 무섭지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나를 놓는 것은 아니라 강박을 놓아버리는 것이니까.
잎이 시들해지는 홍콩야자가 아닌
건강하고 싱그러운 홍콩야자로 키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