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말씀을 잘 새겨듣자
범람하는 연애 상담 콘텐츠를 보다가 내게 꽂힌 말이 있다.
“당신이 가장 장점으로 보던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럴 수가. 딱 내게 하는 말 아닌가?
매사 조심스러워 끝까지 고민하고 후회하지 않겠단 결심이 서고서야 행동하는 나와 달리 그는 쉽게 말해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었다. 화끈하게 결정하고 시원하게 밀어붙이는 점이 나와 달라 좋았다. 나 또한 그를 보고 배짱하나는 개미 오줌만큼 커졌다. 그와 결혼 생활로 얻은 것 중 하나다.
하지만 그의 그런 모습은 결혼 뒤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 요인으로 변했다. 화끈한 결정은 모든 것을 고려한 뒤에 나온 게 아닌 쉬운 결정이었고 그만큼 시행착오와 후회가 뒤따랐다. 배짱으로 밀어붙이는 태도는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듯했다.
결혼 전 시어머니는 직업이 변변치 않은 아들을 감싸기 위해 건물주를 만들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 건물에서 식당을 하며 나보곤 카운터를 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린가? 식당은 열기만 하면 잘되나?)
아무튼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 물정을 몰랐던 나는 달콤한 말을 꿀꺽 삼켰다.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는 시시때때로 내게 일을 그만두고 가정주부를 하라거나 업무로 바쁜 자신의 비서를 하라고 했다.
아무튼 그의 화끈하고 시원한 행동들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가 언제 일을 그만둘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일을 그만둘까? 결혼을 한 달 앞두고 다니던 식당에서 퇴사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도 모르는 그였다. 그로부터 몇 달을 놀고 나의 설득으로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려다가 포기하고, 결국 오랜 설득 끝에 그가 오래 해온 운동과 관련된 업무를 하기로 했다. 타 지역에서 두세 달 일한 그는 거주지 근처에 같은 업종의 업무 공고가 나왔다고 퇴사한 뒤 입사하고, 공무직 자리가 나왔다고 업무 시간과 급여를 줄이고 투잡을 했다.
그러다 아기가 태어났고 동시에 코로나가 시작됐다. 집합 금지 때문에 그의 직장은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당연히 급여는 없었다. 뭐라도 하겠다며 택배 알바를 나간 그는 이틀 만에 교통사고를 냈고 무보험으로 택배차 운전을 한 탓에 생돈을 물어줬다.
집합금지가 끝나고 업무를 재개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화사를 인수했다. 그때부터 지옥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업을 한답시고 집안과 육아를 내팽개쳤고 무수한 거짓말과 함께 밖으로 나돌았다.
이렇게 끈기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피임을 하지 않고 임신을 한 건지… 조상님이 그렇게 시그널을 보냈는데!
결혼 전엔 시댁에 가서 자주 놀았다. 시댁 식구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루는 다 같이 술을 마시고 자려는데 갑자기 술에 취한 그가 내게 “넌 안된다. 너 때문에 죽겠다”며 고개를 저어가며 술주정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그 밤중에 밖으로 나갔고 친정엔 도저히 갈 수 없어 찜질방에 가서 잠을 잤다. 다음날 그는 나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의 술주정과 막말을 알 수 있는 기회였는데, 조상님이 알려주신 건데 왜 어르신의 시그널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그의 나쁜 모습은 내게도 전염됐다. 나 또한 술에 취해 막말을 하는 일이 생겼다. 남탓해서 뭐 하랴 그저 내가 조심 또 조심하려고 한다.
무속신앙의 경고를 받은 적도 있다. 시어머니는 무속신앙을 심리상담처럼 여기신다. 일 년에 한 번씩 신점을 봤던 터라 무속신앙에 대한 거부감이 없던 나는 결혼 후 3개월쯤 지나 그와 함께 한 무당집을 찾아갔다. 얼굴도 보지 않고 내가 온 이유를 줄줄 맞히는 곳이라 몇 차례 방문 경험이 있어 내겐 익숙한 곳이었다.
도령님은 둘 중 한 명만 점사를 보러 들어오라고 했고 내가 들어갔다. 도령님은 내게 대뜸 “같이 있으면 네가 죽는다”라고 말했다. 또 “일을 절대 그만두지 말아라. 그럼 널 더 무시한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말도 많았지만 이 두 마디는 이후로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후일담으로.. 시어머니는 내가 도령님에게 듣고 온 이야기를 전해 듣고 바로 굿을 하셨다)
도령님은 “내게 왜 궁합도 보지 않고 결혼했냐”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앞으로 많이 빌고 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최근 그는 내게 회생 절차를 밟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며 몇 가지 서류를 달라고 했다. 회생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팩트는 많은 대출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 아직 법적 배우자이기에 내 서류가 필요하다는 짧은 설명을 더했다.
내가 왜 내 소득을 그에게 공유해야 되나? 당연히 거절했고, 그는 내게 ”그럼 됐다. 돈 더내고 하면 돼 “라고 싹수없는 말을 남겼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나한테 왜 요구하니?
이 얘기를 전해 들은 한 친구는… 그의 사주를 보더니 ”앞으로 10년간 대운이 안 좋다. 하루빨리 이혼해“라고 권했다.
결혼 전 작은 시그널을 세심하게 알아차렸다면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쥐똥만 한 재산을 뺏기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서류를 정리하란 시그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