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T라서 미안해
엄마가 된 후 경험한 적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모성애의 위대함을 수없이 접해왔다. 엄마는 늘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의심할 여지 없는 믿음이 있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되고 나니 오히려 아이에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을까?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할 만큼 누군갈 사랑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부터 약 2주씩 번갈아가며 아이를 양육했다. 체력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긴 호흡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꽤 좋다. 상대가 양육할 땐 그동안 못했던 일을 처리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흐른다.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면 쉽게 짜증을 내는 나와 달리 아이는 불현듯 “엄마 사랑해”라고 하거나 엄마가 너무 좋아 죽겠다는 듯 껴안고 놓아주지 않곤 한다. 그 모습을 본 나의 엄마는 아이에게 “엄마가 그렇게 좋냐?”고 묻곤 한다. 나도 내가 이렇게 좋을까? 란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은 모처럼 귀가하자마자 씻고, 공부를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어지럽혀진 식탁을 정리하고 양치를 했다. 아이 먼저 내보내고 마무리하고 있는 내게 아이가 “엄마 물은 내가 떠놨어“라고 소리쳤다. 뒤돌아보니 내가 물을 마시고 있던 컵을 들고 방으로 가고 있었다.
옛말 중 틀린 거 하나 없다더니 정말로 백문이불여일견이다. 매일 침대 협탁에 나와 아이의 물을 떠놓고 잠든다. 사실 이건 나의 귀찮음을 덜기 위해 시작된 루틴이다. 아이가 자다 깨서 물을 찾으면 자던 나도 귀찮으니 준비해 놓는 것이다.
1차 감동의 물결이 잔잔해지기 전에 더 거센 2차 감동의 물결이 왔다. 방에 들어오니 내 물컵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매일 밤 일을 하는 나는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굿나잇 인사를 한 뒤 책상에 앉는다. 그러면 아이는 칭얼거리거나 혼자 놀다가 잠에 드는데… 어쩔 수 없이 외면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애리다.
아무튼 이 생활이 8개월쯤 접어드니까 아이도 나름 적응을 했다. 오늘은 내가 일할 것을 알고 책상에 물컵을 가져다 둔 것이다. 내 아이가 귀찮아서 물을 떠놓던 못난 나보다 훨씬 낫다. 마음속 깊이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 언제까지 받아볼 수 있을까?
이 아이가 엄마와 아빠가 같이 살면 안 되냐고 물을 때면 “그럴 수 없다”라고 답하는 게 미안한 밤이다. 오늘 등원을 하면서 아이에게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끝나고 많이 놀자”고 말했다. (굳이 날 찾지도 않는데 왜 그랬을까?) 그러자 아이가 “참아야지”라고 짧게 답했다.
평소 엄마나 아빠가 보고 싶어도 얼마나 많이 참았을까. 이제 눈치로 엄마나 아빠를 찾으면 안 되는 것을 아는듯한 아이가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해질까 봐 늘 노심초사다. 이렇게 나는 또 못난 어른들이라 미안해서 한 없이 바닥으로 꺼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