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인생일대의 중대사가 맞다
나는 왜 결혼을 했을까. 결혼이나 육아에 대한 로망도 없었는데 도대체 나는 왜 결혼을 결심했을까?
29살쯤, 아직도 노는 게 좋았다. 주말마다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보냈다. 희한하게 함께 술을 마셨던 멤버들은 모두 연인이 있었다. 나만 솔로였는데 그래도 누구랑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미 연애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해 남자에 질려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이 멤버들 중 아직 솔로가 있다. 빛이 나는 솔로!)
그렇게 매주 이 사람 저 사람과 술을 마시다가 지금의 그를 만났다. 훗날 들어보니 술자리에서 잠깐 보여준 의미없는 친절이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술자리를 계기로 그는 내게 미친 듯이 들이댔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친구들에게 “절대 안 사귀어”라고 했던 나는 일주일 만에 사귀고 있었고, 3개월 만에 상견례를 했다. 눈 깜짝할 새 결혼했다는 말처럼 눈 깜빡하고 나니 상견례, 또 한 번 깜빡하니 웨딩촬영, 그리고 나니 결혼식이었다.
사귄 지 9개월 만이었다. 그 과정에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라든가, 그와 내가 어떤 가정의 모습을 꿈꾼다거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서로의 단점이 무엇이고 그 단점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심사숙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 나밖에 없다듯이 나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그를 보고 “나에게 이렇게 헌신하는 남자가 또 있을까? 없을 것 같은데… 그럼 결혼해도 되겠지? “라는 단순한 판단만 있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쉽게 사라질지는 예상하지도 못하고.
한 사람을 사계절동안 만나봐야 한다는 관용적인 말이 자꾸 떠올랐지만 매일 만나 시간을 보냈기에, 속도가 무슨 상관이겠냐라고 불안함을 누르곤 했다. 그 역시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결혼과 거리 멀어 보이던 딸의 결혼 선언에, 그가 탐탁지 않았지만 나를 믿었기에 허락하셨다. 그가 뚜렷한 직업이 없어도 게의치 않았다. 무엇이라도 해 돈을 벌 것이고 그 역시 자신감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만날 때마다 특정 건물을 지정하며 “저 건물을 살 것이다. 그럼 일층에 식당을 해라. 월세가 얼마 정도되니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직인 아들이 내게 부족하다고 생각해했던 말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그 건물? 아직도 다른 사람 명의다)
결혼하면 1순위는 나이며 회사를 안다니고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또 양가 부모님에게 모두 잘할 것이며, 돈을 많이 벌면 양가 부모님 차를 사드리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의 말을 듣고 내가 꿈꾸는 단란한 가정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돌아보면 나는 가족이 되면 누구나 가정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결혼 후 외출을 줄였고 가정에 충실했다. 야근이 일상인 바쁜 직장생활 중에 시간이 날 때마다 그와 시간을 보내려 했다. 내가 함께 못 있는 시간엔 밖으로 나돌아도 그러려니 했다. 같이 있어주지 못하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마음이었다. 밖에 돌아다녀도 결혼한 사람이라는 신분을 잊지 않겠지, 쓸데없는 행동은 안 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해야 될 고민과 다짐이 없던 결혼, 상대방에 대항 신뢰도를 가늠하지 않은 채 진행된 결혼이었다. 결혼 생활에 잡음은 예고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잡음을 잘 헤쳐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그와 나는 싸우고 화해하는 우리만의 방식을 만들 새도 없이 결혼해 버렸다.
자존심 싸움이 계속됐다. 결혼 후 첫 부부싸움, 그는 소리를 팽 지르고 집을 뛰쳐나가더니 아는 형을 만나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왔다. 집을 나서면서 “너 때문에 죽겠다”는 폭언도 잊지 않았다. 아무튼 돌아온 그가 누구를 만나고 왔나 하고 핸드폰을 뒤져봤다. 그 안엔 “형, 좀만 더 노력하면 저 여자들이랑 놀 수 있어. 아까 나한테 같이 놀자고 했어 “라는 카톡이 남아있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모르는 여자랑 같이 논 것도 모자라 싱글인 형이 아니라 유부남인 그가 더 나선 것이다. 하. 술에 깬 그는 형이 원했는데 놀지는 않았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확인할 길이 없는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폭언에 일차 충격. 밖에 나가 헌팅을 꿈꾼 행동에 이차 충격. 그때부터였을까. 그와 내가 막장으로 치닫기 시작한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 이지경에 이르렀을까. 도대체 결혼을 왜 해서 이 고통을 떠안았을까. 30살의 나 자신아, 정신 단디 붙들지 그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