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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를 Oct 30. 2024

그는 속마음을 들켰다

나라도 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자

아기를 좋아한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것들을 봐도 감흥이 없었다. 친구가 아기를 낳았을 때도 결혼을 축하하듯 출산을 축하했을 뿐 아기를 만져보고 싶다거나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레벌레 급하게 결혼을 하고도 임신이나 출산, 아기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짧은 연애 후 한 결혼이었고, 30대 초반에 그는 직업도 변변치 않아 양가에서도 임신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쌍둥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생이 뒤바뀐, 더불어 남편과도 멀어진 회사 선배의 모습을 본 후에 나는 육아를 두려워하게 됐다. 그에게 아기를 낳지 말자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정 뭐를 키우고 싶다면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자고 제안했다. 나에게 육아의 공포를 전해 들은 그는 고민해 보겠다고 말은 했다. (끝까지 동의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생리 예정일에 소식이 없었다. 칼 같은 주기였지만 하루이틀정도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엔 느낌이 싸했다. 왠지 불안했다.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된다는 말은 진짜였다. 내가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조차 남사스러워서 혼자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남몰래 체크했다. (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결과는 두 줄. 혹시 오류가 아닐까? 그날 저녁 또 남몰래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역시나 두 줄.  두 번째 또한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을 지나 점심에 이르러서야 그에게 카톡으로 “나 임신한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내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기쁨? 환호? 는 없었다. 그저 남편이니까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이혼을 거론한 부부싸움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생활유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임신 중에 철야를 견디며 회사를 다닌 나는 체력적 힘듦을 호소했다. 사실 그전에도 체력이 부족했기에 그는 그다지 동조하는 거 같지 않았다.


그에게 물었다.


“배 불러서 차로 왕복 4시간을 왔다 갔다 하고 밤새는 거 안 힘들어 보여? 속 쓰려하는 거 안 불쌍해?”


그가 답했다.


“사실 내가 임신한 게 아니라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당시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저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는지 알겠다. 내 고통이 아니면 관심 없다는 이기적인 마음, 공감하려는 노력이 없는 태도, 내 아이를 책임질 마음가짐의 부재.


그렇게 결혼처럼 임신과 출산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지나갔고, 육아가 시작됐다. 생각보다 육아가 괴롭진 않았다. 모유수유도 부족한 수면시간도 괜찮았고, 이유식을 만드는 건 재밌기까지 했다. 기대만큼 아이가 사랑스러워서 미치겠다는 감정이 들진 않아 모성애가 없나?라는 고민을 했지만 내 아이이기에 예쁘고 귀여웠다.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하나씩 해나가는 모습이 기특했다.


그가 육아는 내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어 거슬렸지만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오려고 노력했기에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사랑스러움이 커졌다. 동시에 버겁다는 생각도 피어났다.그를 닮아 활동적인 아이의 에너지를 감당하기에 내 에너지는 너무 하찮았다.


그 사이 퇴사를 했고, 일하는 동안 못 준 사랑과 정성을 주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는 와이프가 집을 지킨다는 빌미로 밖으로 나돌았다. 퇴근이 원래 늦긴 했는데 매일 12시가 넘어 귀가했고 어떤 날은 남들이 출근하는 아침에 들어왔다. 차에서 잠들었단 구질구질한 변명을 했고 나는 화를 내긴 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기에 그의 말을 믿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육퇴 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내게 혼술 하며 TV를 보는 시간은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주량도 늘었다. 맥주 한 캔이 네 캔이 됐고, 소맥을 마시다 소주만 마시는 날도 있었다.


술을 마시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곤욕이었다. 육아를 내팽개친 그도 얄미웠다. 아침에라도 아이를 보라고 선언했고, 그는 내 잔소리를 들으며 어느 정도 착실히 이행했다. 그래서 사이가 더 멀어졌을까? 난 감시자가 됐고 그는 내 눈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혼술을 했고 10kg가량 살이 쪘다. 그만큼 매일 술을 퍼마셨다. 여전히 그는 12시 이후에 귀가했다. 어쩌다 일찍 온 날엔 혼술을 하는 내게 말 한마디 걸지 않고 욕실로 직행했다. 게다가 그나마 가족이 함께 보내는 일요일마저 두 달 내내 출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중 일부는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


그렇게 육아하는 보모이자 청소하는 가정부로 방치되길 몇 달.  창밖을 보는데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가 괴로워서는 아니었다. 지금의 삶이 괴로웠다. 매일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그를 보는 게, 아침에 내 눈치를 보며 육아하는 그를 보는 게, 한마디 말도 없이 일요일마다 나와 아기가 깨지 않게 조용하고 재빠르게 집을 나가는 그를 보는 게 힘들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사소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그는 내 눈치를 보는 일이 늘어갔다. 겉으로 싸우지 않아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내가 느낀 집안 분위기는 삭막했다.  그때쯤 마음이 먹어졌다. 아이를 남편에게 두고 이혼할 수 있겠다고. 내가 살아야겠다고. 그래도 아이만큼은 끔찍하게 사랑하니까 그냥 믿고 맡겨두자고. 직장도 없는 나와 풍요롭지 않은 친정보다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댁의 보살핌을 받는 게 나을 것이라고. 얼마 후 나는 아이를 두고 나왔다.


별거 7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그가 내게 아이를 전담해서 볼 수 없겠냐고 물었다. 이유는 아이가 불안해한다는 것. 그때까지 이주에 한번 3박 4일씩 면접교섭을 하고 있었다. 현재 밤에 재택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전담하기 힘드니 매주 휴무에 2박 3일씩 있겠다고 했다.  매주 만나는 아이는 너무나 말짱했다.


얼마 뒤, 그는 내게 이혼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카톡을 보냈다. 장황한 메시지 그 어디에도 사과와 과오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내가 왜 일을 이렇게까지 벌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아이를 위해 다시 생각해 보란 일종의 제안이었다. 물론 거절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이혼과 재산분할을 두고 의견을 대립했다. 그는 해야 될 희생이지만 아이를 키우느냐 할 일을 못하고 있고 아이를 대신 돌봐주는 시어머니 또한 수익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견을 주고받던 중 그는 내게 아파트 값에서 어머니께 받아 온 1억 9천만 가져갈 테니 아이를 키우고 양육비도 바라지 마라고 했다.


그는 내게 속마음을 들켰다.


그동안 하지 못했을 말이었다. 아이를 키우기 싫었던 것이다. 임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것, 임신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았던 것, 귀찮거나 피곤함을 이유로 애를 대충 돌본 것, 육아 중인 내게 말 한마디 없이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한 것, 내가 퇴사하자마자 신이라도 난 듯 바깥일을 한다고 나돈 것, 별거 후 내게 “나도 새 출발을 해야 되니까”라고 흘리듯이 말했던 것 등 일련의 일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내가 쓰레기랑 결혼했음을. 그간 그와 나의 차이일뿐 못된 사람은 아니라고 여겼던 내 마음이 우스웠다. 내 안목이 구리다는 걸 받아들이기 싫었아보다. 나한테만 책임감이 없는지 알았지 아이한테까지 책임감이 없을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하니 한번 책임감 없는 인간은 누구에게나 없을 것이다. 그걸 믿었다니 나 자신이 한심하다)


나는 지금은 나와 친정의 형편이 안된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오히려 나를 설득했다. 지금 밤에 하는 일은 직장이 안 되냐? 내년이면 학원을 돌릴 수 있다. 나도 돌리려고 했다 등등의 개소리… 내가 양육비 받는 것 없이 양육만 한다면 당장 아파트에서 짐 빼서 나가주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럼 문제될게 없단다. 하하.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홀로 아이를 성인까지 키우는 게 걱정이라 망설여진다. 써글놈. 내가 왜 회사를 관뒀는데.


마음 한켠엔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혼자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부모로서 하면 안될 생각이지만 부모라서 져야만 하는 책임이 무겁다. 그런데 저런 쓰레기에게 아이를 맡기자니…. 우리 아이 또한 나처럼 방치되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키우는 게 맞는 걸까?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애가 불쌍해질 텐데…..


이 대화를 나누고 4일이 지났다. 피곤한데 잠을 잘 수가 없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요 며칠 동안 과거에 봤던 책 제목이 계속 떠오른다. 결혼 상대는 추첨제로.


쓰벌.


이따구로 쓰레기랑 결혼할 거였음 추첨으로 뽑은 사람이랑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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