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입, 잘 단속하길
하루는 그가 등원을 하고 왔길래 밥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집에 먹을 건 없었지만 우선 의사를 물었더니 오는 길에 콩나물국밥을 먹고 왔다고 했다.
마치 알아서 끼니를 해결하고 왔다는 게 나를 배려한 것처럼 아주 잘하지 않았냐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투였다.
진심으로 황당했다. 집에 차려 먹을 게 없을 것은 기정사실이었으니 먹고 온 거까진 그러려니 했다. 내가 자고 있었으니 혼자 먹고 온 것도 괜찮았다. 그런데 나 또한 일어나면 밥을 먹어야 할 것이고, 내가 먹을 것 역시 없는 것 아닌가.
웃음이 터졌고 머리에 든 생각이 필터링 없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밥 먹으면서 내 거를 사 와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 나 같으면 하나 더 사 오던가 전화해서 물어봤을 거야.”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맞네”라고 했던가 뭐라고 의미 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 뒤론 혼자 밥을 먹으면 내가 먹을 것을 포장해 오긴 하더라. “배가 안 고파”라며 바로 출근을 했던 날도 있던 걸 떠올리면 무언가 먹고서 나한테 말을 안 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의심병 같지만 그는 사소한 거짓말을 특별한 의도 없이 잘한다. 나는 이걸 습관성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비슷한 일이 꽤 있었다. 출근러 시절 나는 한 달에 한주는 꼭 주말출근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혼자 아이를 보지 못하고 시댁에 가거나 시부모님을 집으로 불렀다. 도대체 왜 혼자 아이랑 못 있고 부모님을 못 살 게구나 싶었지만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게 편하면 그럴 수 있겠거니 했다.
시부모님은 “며느리가 불편해한다”며 내가 귀가하기 전에 돌아가시곤 했다.(시부모님이 날 불편해하셨다는 느낌은 단순히 느낌일 뿐일까?) 아이를 돌봐주시는 게 고마웠던 나는 맛집에 들러 음식을 포장해 갖다 놓기도 했다. 직접 차려드리진 못하니 사놓기라도 하는 게 어른에게 할 도리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시부모님과 그가 저녁을 먹고 나면 내가 귀가할 시간이 됐는데, 언젠가부터 그가 퇴근 후 피곤하다는 핑계로 집으로 시부모님을 불렀다. 나를 제외한 그들은 저녁을 맛있게 배달시켜 먹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순간 이유 없이 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 혹은 며느리가 퇴근해 오고 있는 걸 알면서 왜 음식을 덜어놓지 않을까? 난 보고충이라 퇴근하면 퇴근했다고 바로 알려주는 사람인데. 그 전화에는 분명 “식사는 어떻게 하셨나?”라는 질문이 있었을 테다.
우리 부모님은 그 없이 친정에 방문한 나와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 음식에 손대기 전 따로 덜어 포장해 주며 “00이 아빠 먹으라고 해”라고 하는데 말이다. 내가 아무리 “됐다”라고 한사코 거절해도 엄마는 “집에 먹을 것도 없을 것 아니냐. 힘쓰는 사람은 잘 먹어야 한다”며 음식을 덜어주곤 했다. 하다 못해 친구 모임에서 조차 늦는 친구가 있으면 음식을 덜어놓던가 새로운 메뉴를 시키는데 말이다 남편인 그가 못하면 시부모님 중 누구라도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이 생각은 뇌리에 박혔고 그렇게 몇 주동안 같은 일이 반복되자 나는 속 좁게 꽁하고 있지 말자 싶어서 그에게 말했다.
“내가 퇴근해 오고 있잖아. 저녁을 못 먹었을 건 뻔하고. 그런데 음식을 덜어놔야 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 어떻게 한 번을 음식을 덜어놓질 않아? 아무도 그 얘기를 안 해?”
그는 그때도 어물쩍거리며 무어라 말했고 그다음 주엔 시어머니가 “이거 입도 안 댄 거야. 꼭 챙겨 먹어”라는 말과 함께 아귀찜을 보여줬다.
그에게 한 말이 시어머니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이 왜인지 모르게 기분 나빠 한 입도 먹지 않고 그대로 버렸다. 그는 그렇게 불쌍하다던 우리 엄마를 “00이 먹을 거 덜어놔”라며 쥐 잡듯이 잡았을 것이다. 그의 엄마는 아들 말이라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도 찾아낼 분이니까. 그 역시 그 사실을 알아 엄마에게 무엇이든 거리낌 없이 도움을 요청한다.
시어머니는 아귀찜을 덜면서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나 같으면 “며느리가 아주 상전이네!” 했을 거다. 이 인간아 왜 네 와이프를 엄마한테 챙기라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