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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연 Sep 27. 2024

가지고 싶은 것

: L에게

 나에게는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었다. 여행을 좋아했지만, 그때의 나는 멀리 나가기에는 아직 많이 어려서 난 산책을 여행 삼아 즐겼다. 그리고 익숙한 풍경들을 프레임 속에 다시 담아 낯설게 바라보는 일을 즐겼다. 글 쓰는 일을 즐기던 나였으니, 나의 기록에 사진까지 더할 수 있게 된 거지.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이야.     



 자연스레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과도 가까워졌고, 그중에는 너도 있었어. 나는 이제 막 사진에 재미들린 아마추어였지만, 너는 나보단 조금 더 전문적이어서 너와 함께 있을 때면 가끔 말문이 막혀 어렵기도 했어. 난 지금이나 그때나 기계치거든. 그래도 제법 괜찮은 시간이었어. 나라는 사람은 워낙에 뭔가를 배우길 즐기니까 말야.


 내가 한창 사진기를 들고 풍경을 찍던 모든 순간에는 네가 있었다. 그래서 그럴까. 여전히 난 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사진기가 떠올라. 아니면, 엄연히 너에겐 다른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진사로서 처음 알게 되어 그런 걸까.     



 굳이 이번 편지를 너에게 쓴 건 네가 사진이라는 말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사람이어서야. 나는 가지고 싶은 사진이 있거든. 사람을 잘 잊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나도 그간 너를 떠올린 적이 없었으니, 나의 기억 속에서 만나는 일도 무척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어? 우리는 추억 속에서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되는구나.



 아무튼, 아직은 서툴렀던 나의 출사에 네가 함께 있곤 했어. 그 덕에 나도 소소하게 떠난 나의 산책 여행이 외롭지 않을 수 있었고 말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내겐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거든.      



 그렇게 몇 년 만에 내게 수천, 수만 장이라는 사진이 쌓였다. 한 장 한 장이 다 추억이었고 소중했어. 가끔 사진이 많으면 그럴 때가 있잖아. 어, 이게 언제더라. 어디였지. 하는 혼란들 말야. 나 역시도 그럴 법했는데, 놀랍게도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가 그런 일이 없었을 만큼 사진 하나하나가 새겨진 추억이 무척 깊었어.


 그렇게나 소중했던 추억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서툴렀던 만큼 너무 안일했어. 사진을 따로 백업해두지 않고 개인 블로그에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었는데, 조금 더 컸던 어느 날 급하게 블로그를 정리해버리면서 수년간의 내 사진들도 함께 사라져버렸지 뭐야. 사진을 쌓아나가기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지. 어찌나 허무하던지.     



 그래서 나의 몇 년간은 그 어떤 사진도 남아있지 않아. 가끔 이런저런 사진들을 들여다볼 때면, 갑자기 뻥 뚫려있는 시간을 마주하며 그때 내가 잃은 사진들이 못내 아쉬워. 너도, 사진도 이젠 모두 내 기억 안에만 존재하는구나. 너의 기억 안에도 나의 추억들이 아직 남아있을까, 가끔은 궁금해진다.     



 잘 지내. 사진 찍기 좋은 가을이야. 너의 마음에 단풍처럼 붉은 나의 인연이 한 구석 수 놓아져있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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