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에게
살면서 자주 받게 되는 질문 중 하나를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해 봄과 동시에 이전과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해보곤 해요. 그래도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만큼은 제법 한결같아서 내 대답은 늘 글, 미술, 글, 미술... 그렇게 대답해왔었지요.
미술은 내가 어릴 적부터 전공으로 삼아온 업이니 그렇다 치지만 글을 쓰는 일이 늘 한결같이 나를 따라다녔다는 건 특별한 일이었죠. 누구나 살면서 가슴 깊이 품게되는 꿈이 생기잖아요. 그게 나는 글쟁이로 살아가는 일이었어요. 새해면 신문사마다 발표하는 신춘문예 공고만 봐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버리는 걸 보면서, 내 스스로 글쓰는 일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었거든요.
제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시절에도 무슨 놈의 놀이가 그렇게 많았어요. 얼음땡, 블랙홀, 경찰과 도둑, 엄마놀이, 병원놀이...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 무수히 많은 놀이조차도 질려버린 날이 있었어요. 놀이터 정자에 둘러앉아 무얼하며 놀까 고민하며 이야기하던 그때 ‘그’ 놀이를 제안한 친구가 있었어요. 당연히 그게 누구였는지는 이젠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단지 그 친구의 머릿속에서 지어낸 새로운 놀이였다는 것만 기억이 나요.
그건 번갈아 가며 한 문장씩 이야기를 이어붙이는 놀이였어요.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놀이였죠. 직접 지어낸 그 놀이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무수한 놀이들에 질릴 대로 질린 우리는 새롭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새로운 놀이에 빠져들고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 짓기 놀이는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었어요. 내가 시작한 문장이, 다른 이들의 입을 거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마구 비틀리는 것이 어찌나 웃겼는지 몰라요. 처음 등장한 공주는 갑자기 모험도 떠나고, 용을 잡더니, 죽었다 다시 태어나기도 하는 둥 우리들의 자유롭게 상상 속을 활보하고 있었어요.
그게 내가 이야기를 처음 만들었던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 순간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올지 누가 알았겠어요. 처음엔 입으로만 떠들다가, 시간이 지나서는 그 이야기들을 친구들과 돌아가며 글로 기록하고, 어느 순간 나 혼자서도 하나의 이야기를 완결시킬 수 있게 되었지요. 글을 쓰다보니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문자로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나는 시도때도 없이 글을 쓰는 아이가 되어있었어요.
글 속에서는 한계가 없었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전하기도 하고,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 살아보고 싶었던 인생, 말하고 싶었던 사건의 이면 따위를 글로 썼어요. 그 이야기들을 함께 즐겨주는 사람들은 내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었지요. 그렇게 한 글자, 한 문장, 한 장 그리고 한 편. 쌓여온 글들은 수천 개가 되었네요.
얼마 전 당신이 내게 원래 글을 썼었냐는 질문을 던졌었지요. 그 자리에선 간단히 대답했지만, 나의 서사는 이렇듯 훨씬 복잡했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나는 글쟁이였고, 평생 글쟁이이고 싶어요. 수많은 전공을 거쳐오며 공부를 해왔지만, 여전히 내가 제일 자신이 있는 건 글쓰기입니다. 좋아해서 잘하는 건지, 잘해서 좋아하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