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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연 Sep 20. 2024

내 생의 이유

: L에게

 너의 꿈을 기억한다. 너는 네가 품고 있던 꿈에 걸맞게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졌고, 무심히 앉아있던 내가 너를 향해 고갤 돌리게끔 만드는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어. 한 단어로 정의할만한 꿈이 없었던 내게는 생소했던 모든 경험들. 그래서 내 눈에 네가 더 빛나보였는지도 모를 일이지.


 너를 만나기 전, 내 꿈이 뭐였는지 알아? 내 꿈은 직업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 나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마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는 것. 누군가 벼랑 끝으로 내몰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그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내 꿈이고 목표고, 신념이었어. 어떻게 보면 되게 거창한 꿈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소소하기 그지없지.     


 그러니까, 원래 내 꿈에는 누군가가 특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너를 만나기 전까진 말야. 그저 내가 아끼는 모두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정도였는데. 너를 알고, 마음에 담고, 그리고 네가 내 꿈이 되어버리고 말았지 뭐야. 네가 가진 빛을 지켜주고, 그 빛을 오래도록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면.



 맹목적이라는 말은 참 무섭기도 하지. 나의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텅 빈 놀이터 그네에 홀로 앉아 울던 날,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다 버리더라도 너 하나만 내 곁에 남아있을 수 있다면 좋겠더라는 생각마저 했다. 행복하고 싶다는 내 소원을 몇십 번이고 외면한 신이란 존재를 믿지는 않았으나,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았으니 지금 하나 정도는 들어줘도 되지 않겠냐는 악에 받쳐 빌었던 소원. 너 하나를 지킬 수만 있다면 다 잃어도 좋다는 그런 무서운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되고야 말았어.   

  


 그리고 그 끝은 너도 이미 알 거야. 우리는 세상을 잃었다. 너에겐 나만이, 내겐 너 하나만 남았다. 하지만 내 곁에 묶여 과거에 머무르며 망가져 가는 너를 보고 있자니 결국 그것마저도 욕심이라는 걸 알았다. 다 잃고서도 너를 쥐고 있는 일이 욕심이라니, 참 서글펐지만 결국 나는 너를 놓았다. 그렇게 난 너마저 잃었다.



 결국 우리 둘 다 모든 걸 잃은 셈이지. 아주 오랫동안 난 그런 너를 위해 살아왔어. 모두를 향했던 내 꿈이 너를 향하고, 그저 너에게 내가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끝내 너와 함께 할 수는 없었으나 그저 멀리서나마 지킬 수 있기를. 세상 모두가 등 돌린 너에게만은 손 내밀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 얼마나 달려왔는지 몰라.     


 하지만 우린 끝내 인연이 아니었던 거겠지. 넌 늘 어딘가 어긋나 있었고, 내가 내미는 손에 몇 번이고 생채기를 남겼다. 그리고 그 비수가 내 가슴을 향했던 어느 날, 난 그만 지쳐 널 완전히 떠나보냈다. 뒤늦게 나를 붙드는 너를 다시는 돌아보지 않은 채로.     



 그 이후 난 몹시 자유로워지긴 했어. 널 사랑하고 있던 그때보다 난 아주 가볍고 자유로워. 분명 난 더 자주 웃고, 다시 주변을 챙기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어. 여린 살이 차오른 상처가 때때로 아파오긴 하지만 뭐,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아. 견딜 만해. 그런데 딱 하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 게 있어.     



 잃어버린 꿈만은 되찾지 못해서, 지금 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 이 말이 너를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야. 단지, 너무 오랫동안 너만 바라보는 동안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말이야. 무언가를 하려 하면 이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저 허무해져 버리는 이 기분을, 너는 알까.


 그래서 지금 나는 다시 나를 찾아보려 하고 있어. 도통 모르겠는 나의 생의 이유를. 세상도, 너도 다 잃고도 여전히 내가 살아가야 하는 그 이유를. 너는 과연 찾았을까. 이젠 안녕, 오래 사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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