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에게
K에게
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인데, 부쩍 들어 하루하루 쳇바퀴만 돌리며 지내고 있네요. 그런데 그 쳇바퀴는 너무도 크고 빠르다는 거. 그래서 나는 자주 번아웃이 오고, 자주 길을 잃고 있어요. 그래도 늘 내 느리고 무거웠던 걸음걸음이 모여 한 번씩 뒤돌아보면 제법 멀리 나아가 있었던 지난 날들을 기억하니까, 난 오늘도 멈추지 않고 또 한 걸음 나아가고 있을 뿐이지요. 바쁘고 고된 이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있겠지요.
가끔 그런 날이 오면 무얼 하면 좋을까 상상할 때가 있어요. 이 모든 바쁨이 끝나고 평화롭고도 여유있는 어느날. 나는 자꾸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머물고 싶단 생각을 자주 해요. 지금은 내 주변에 내가 뭘 할 수 있고, 뭘 해야 하는지 너무 눈에 빤히 보이니까요. 아주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는 거죠. 그냥 그곳에서 유유자적하며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사람을 구경하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고, 글 따위를 쓰는 그런 상상을 하며 오늘도 나는 버텨요.
짧았지만 당신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지난 날을 기억합니다. 인연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런 말을 듣게 되었어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연은, 무엇이 됐던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온 존재이다’
이 문장만큼 당신에 대해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어요. 그 짧았던 인연 속에서 당신은 내 삶에 어찌나 많은 배움을 전해주고 갔는지요. 나는 당신으로부터 인간을 사랑하는 태도와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배우고, 그 시간을 인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지요.
당신이 알려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풍요롭고, 퍽 외롭습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불의는 많으나, 그 속에서 내가 사랑해야 할 이들 또한 많은 까닭입니다. 당신으로부터 배워 언젠가부터 사명처럼 안고 가게 된 나의 신념이 미약하게나마 세상의 빛이 되길 바랍니다.
언젠가 당신이 그랬잖아요. 당신은 정말 가까워지고 싶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같이 여행 간다고. 그냥 알고 지내는 상대방과 여행지에서 상대방의 모습은 또 다르고, 비교적 짧은 시간 만에 상대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면서 말이에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생길 때마다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단 생각을 해요. 책임을 내려놓고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겠지요.
지금 내가 몹시 그리워하는 것은 결국 여행이었던 걸까요. 여행을 좋아하고, 또 여행이 일상 깊이 녹아들어 있던 당신이 생각나는 새벽입니다. 언젠가는 세계를 돌고 돌다 어느 여행길에선가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감사했고, 많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