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에게
L에게
오늘도 난 온종일 일을 다녀왔고, 다녀오자마자 정신없이 과제를 해나가고 있어. 어제도 스터디 카페에서 꼬박 밤을 샜는데, 여전히 할 일은 많고 자꾸만 눈이 감겨서 이제 그만 자고 싶어. 목록들은 어쩜 이렇게 줄어들지를 않는지. ‘이것도 이렇게 해나가다 보면 끝이 있겠지’하며 오늘 새벽도 난 책상 앞에 앉아 빠르게 타자를 치고 있다. 타닥타닥.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에만 치여 살다 보니, 하지 않을 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 막상 또 생각해보면, 나는 나름 절대 이것만큼은 하지 않겠다는 기준이 제법 분명한 사람이라 떠올리기가 어렵지는 않았어. 아이러니하지.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나는 늘 그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었다는 게 말이야. 너는 알까? 두루뭉술하게 살아왔던 내게 이런 명확한 기준이 생긴 건 바로 너 때문이었거든.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의존하거나 떠넘기지 않겠다는 게 내 첫 다짐이었어. 그로 인해 난 너무도 많은 걸 잃었고, 그 ‘남’이었던 너 역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으니. 그 이후부터는 뭔가를 의지하는 일이 너무나 무서워졌다. 그냥 조금 힘들고, 조금 더 지치더라도 내 몫은 내가 감당하는 게 맞다는 사실이 머리에 확 박혀버렸지 뭐야. 그로 인해 힘들고 지치는 것 역시 사실은 내 몫이어야 맞는 거잖아.
두 번째로는 내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다는 거였어. 지금 내가 사는 시간은 다른 이들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 내 시간이 아닌 남의 시간을 빌려 살면서 어떻게 그걸 함부로 할 수 있겠어. 그 덕에 꿈이 없던 내게 꿈이 생기고, 할 일 없던 내게 이렇게나 많이 할 일들이 주어졌어. 나는 지금에 그저 감사하고 싶어. 그래서 잠시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하루하루를 채워나가. 가끔 나를 찾아오는 번아웃은, 내가 어떻게든 해내보려 해. 그것 또한 내 몫이니까.
자잘한 목록들은 얼마든지 더 있지만, 여기엔 그냥 이만큼만 적을래. 너는 내 인생에 변화를 선물한 사람이야. 어디선가 묻더라고. 내 인생에서 나를 가장 크게 변화시킨 일이 무엇이냐고 말야.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했어. 사랑은 언제나 나를 변화 시킨다고. 그러니 너는 내게 사랑이었던 셈이지.
하지만 많이 변한 난 이미 네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닐 거야. 네가 그리워하는 모든 것은 너의 추억일 뿐이야. 아직도 여전히 네가 날 찾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곤 해. 널 위해 변화하다 보니 이젠 내가 너무 변해버린 모양이야. 널 만나려 하지 않는 내 모습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색하다. 그러니 안녕. 이젠 추억이 된 내 전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