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감정

: H에게

by 홍연

H에게



안녕, 너에게 쓰는 편지도 인사도 무척 오랜만이구나. 오늘은 모처럼 너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네. 나는 어젯밤 친한 동생과 즐겁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어. 그러다 우연히 길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무리를 만나 반가웠지. 서로 놀람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갈 길을 가는데, 네가 곧장 연락이 오는 거야. 나는 널 보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거기엔 너도 있었더라고.


그 무리에 네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너의 존재감이 이제는 내게 제법 둔해진 것같아. 내게는 놀라운 일이지. 나는 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무리에 섞여있어도 너만큼은 가장 먼저 찾아냈었거든. 이렇게 무던해지기까지 참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 지금 이 결과가 좋은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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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에도 적당한 기간이라는 게 있을까? 있다면 아마 난 너를 적당하게 좋아하지 않았을까.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털어내기까지 반 년이 조금 안 걸렸어. 그 시간동안 마음 고생은 좀 꽤 해야 했지만, 이런 감정을 느껴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테니까. 무척 오랜만이라 한편으로는 이 감정 자체가 무척 설레고 감사하기도 했거든.



내 짝사랑 이야기는 세드 엔딩으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슬픈 사랑 영화 한 편을 보고난 뒤에 그 기억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잖아. 그것처럼 너를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내게는 좋은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았어. 그리고 그 감정은 내 삶에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겠지. 어떤 감정들은 그 자체로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잖아. 난 너를 향했던 내 마음이 그랬다고 생각해.



이제는 지나가다 마주치는 널 봐도 심장이 쿵 하지도 않고, 무리 속에서 네가 제일 먼저 보이지도 않는 내가 되었다. 네 말 한마디에 술을 찾거나, 담배를 빼어물지도 않겠지. 희망 한 가닥 잡아보겠다며 타로점을 보거나, 깊은 새벽 답답한 마음을 어찌해보기 위해 혼자 노래방을 찾지도 않을 거야.



우린 이렇게 다시 각자의 일상 속에서, 각자의 길 위로 돌아가. 잠시 얽힐 듯 했던 붉은 실은 느슨하게 풀어져 버린다. 씁쓸하지만 그러한 형태의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야. 대신 오래볼 수 있는 좋은 인연으로는 남으리라고 믿어. 우린 그러기 위해 서로에게서 고개를 돌린 거였으니까.



이제는 새로 시작한 너의 연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H. 너의 앞으로의 시간도 행복하기를 바라. 너로부터 받은 소중한 감정들은 내가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도록 할게. 예쁜 추억들을 내게 선사해줘서 고마웠어.


가볍게 인사하며 스칠 수 있었던 어제처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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