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 L에게

by 홍연

L에게



안녕 L. 새해가 밝았어. 요즘의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너를 떠올리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너로부터 시작되었던 내 길이, 조금씩 갈라진 지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느껴. 시작은 너였어도, 그게 마지막까지 너라는 법은 없는 거니까. 이런 나를 보며 넌 또다시 서운해할까 아니면 응원해줄까.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너의 모습이라면 너는 내 행복을 응원해주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야.


17살에 널 만나고 내 인생은 사뭇 많이 달라져 버렸다. 평범하게 산다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어려워질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크나큰 생채기를 남기고 결국은 너도, 세상도 잃었다. 그것이 내 목표의 시작이었지. 화마가 지나간 산에서도 새싹이 올라오듯, 때로는 황폐해진 자리에서 새로운 것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걸.



어떤 목표는 얻기 위함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던 10년이다. 지키기 위해선 살아야 했고, 가져야 하는 것들이 많았거든. 내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죽음만을 생각하던 내가 목표를 가지게 되고, 쉼 없이 달리면 달릴수록 내 목표는 점점 뚜렷해졌어.



트라우마의 정확한 학명은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말해. 이렇게 된 부르는 이유는 아직 정확한 기전이라던가 명확한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단순히 어떤 충격적인 외상에 의해 가지게 된 마음의 병을 통틀어 우리가 트라우마라고 말하는 이유야.


나는 너를 만나 사랑도 배웠고, 그 과정에서 추억도 얻었지만, 결국 이 모든게 트라우마로 남아버렸어. 사랑했던 깊이만큼 상처도 충격도 컸던 그 시절의 우리에게 남은 건 어쩌면 트라우마 하나일지도 몰라.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이 트라우마로 변한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이별했더라면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은 시간이 결국 추억으로만 남겨줬을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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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것은 치유였기 때문에 나는 트라우마를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살기 위해 시작한 공부가 결국은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하게 된 것은 그저 나라는 사람이 가진 품성 때문이었고, 결국 그 시작은 너였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 그때도 지금도 너는 여전히 나의 목표야.



이제는 너를 떠나 나아가는 나지만, 그 시작을 잊지는 않으려고. 너를 마음에서 떠나보내던 어느 날, 더 이상 이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네가 없어도 트라우마는 계속 남아서 지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니까. 나의 공부는 천천히 너를 지워가는 과정이 될 거야.


이 공부의 끝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를 떠올려도 나의 일상이 괴로워지지 않도록. 그냥 깊게 사랑한 적이 있었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네가 되었으면.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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