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마지막을 알고 있다면

: H에게

by 홍연

H에게



오래전 그 언젠가, 그런 질문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만약, 나의 죽음을 알 수 있다면 알고 싶은지 아니면 모른 채로 살고 싶은지. 그때도 지금도 내 마음은 변함이 없으므로, 어떤 답을 내놓았는지 쉽게 떠올릴 수 있어요. 그리고 이번 일로 내 답은 더욱 확고해졌죠.



지난밤, 그 사람들은 내게 죽음을 선고했어요. 내가 가진 죄의 무게는 그렇게 디케의 저울 위에서 죽음으로 결론 내려지고 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내 잘못의 무게를 가볍게 생각한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나 역시 분하고 원통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아니, 내 감정은 이미 죽음이라는 존재 앞에서 무의미했어요. 어차피 나라는 존재는 감정까지도 죽음 이후엔 한 줌 재로 스러질 뿐이니까요.



이렇게 끝이라니요. 갑자기 한 순간 정전이 되어버리듯 아무 정리도 하지 못한 채로 내 삶의 막을 내려야 한다니요. 그 순간의 절망감을 나는 영영 잊지 못해요.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스스로의 감정과도, 그 어느 것과도 정리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이대로 세상에서 지워져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아득함에 손이 덜덜 떨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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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버틸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죠. 저 앞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교수대 위에는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한 빈 줄이 허공에 흔들리고, 내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요. 까마득한 절망 속에서 절망할 겨를조차 없는 그 마음을 누군들 알까요. 내가 못다 한 일들은 누군가 이어가 줄까요. 그렇게 끝맺음을 해줄까요. 나의 이 억울한 마음은 이대로 영영 바람이 되어 사라지는 걸까요.


이런 절망 속에서 나는 지금 당장 내가 해야할 일을 찾아요. 나의 상황을 알리는 일 밖에는 난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게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둘. 당신과 당신 옆의 그녀였죠. 그녀가 먼저 소식을 전해 듣고,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당신은 다음에 있을 일을 예상하지 못한 채로 내게 먼저 말을 해요.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상황이 조금 나빠졌을 뿐, 당신도 나도 존재하고 있을 그런 미래에 대해서. 당신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미래를 내 입으로 무너뜨려야 하는 그 순간은 그 자체로 이미 지옥이었어요. 하늘은 늘 내게 이런 것만 선사하는 존재였죠. 지독하게 나를 미워하는 존재가 아니고서야, 어쩜 나에게 이럴 수가 있나요.


“아니야, 아빠. 그게 아니야. 나 죽어. 나 죽는대. 죽어야 한대”



당신은 말을 멈추고, 차분히 내 말을 들어요. 내가 마무리 짓지 못한 인연에 대해. 다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다 풀어내지 못한 내 감정에 대해. 극한의 순간마다 차분해지던 당신의 모습이 오늘 사뭇 다른 건, 평소와 달리 흔들리는 눈동자를 내가 봐버렸기 때문이겠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고, 나의 물기 서린 시야에 당신이 들어와요.



“사랑해 아빠. 사랑해. 사랑해.”



이제 나는 떠나야 할 시간이에요. 내 옆에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저 앞에는 무겁고도 음습한 밧줄이 보여요. 서서히 몸을 일으켜 그들을 따라 그곳을 향해요.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이렇게 한을 품고 가면 나는 당신이 보지 못하는 형태로 세상에 여전히 머무르게 될까, 하는 덧없는 생각 따위나 하면서.






그리고 잠에서 깨요. 숨은 가쁘고 온 몸은 땀에 절어 있어요. 여전히 내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절망감과 악몽일 뿐이라는 안도감이 나를 휘감으며 서럽게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이래서였어요. 내가 매번 답하기를, 내 죽음의 순간을 알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이유는요. 이런 감정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았다구요.



아빠, 나는 여전히 죄책감 속에서 세상을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점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져요.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져요. 그래서 자꾸만 겁이 많아져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런 악몽조차도 두려워져 버린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지독한 압박감 속에서도 새벽은 찾아오고, 푸르스름한 빛이 스미고 있어요. 내 삶도 그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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