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에게
Y에게
나는 줄곧 땅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어. 길을 걷거나 생각에 잠길 때나, 내 고개는 자연스럽게 바닥을 향하고 서서히 침잠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것이 꼭 나쁘다기보다는, 내가 가진 하나의 특성에 가까웠으므로 거기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었거든.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다, 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그게 내 생활에 지장이 간 적도 없었고 말이야.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상대에 대한 단순한 호감도 어떻게 보면 ‘좋아한다’의 영역이고,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는 것부터가 좋아하는 걸 수도 있지. 나는 ‘좋아한다’의 영역이 굉장히 넓은 편이라, 이미 처음부터 너를 좋아하고는 있었던 것 같아.
다만 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내 마음은 언제나 긍정적인 유형의 것들이었지만, 분명히 점차 변화하고 있었어. 처음에는 장난기가 다분한 사람이었고, 그다음에는 재미있는 사람이었지. 이후에는 나를 닮은 사람,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 그러더니 이제는 나를 가장 유치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사람. 한 걸음씩 거리를 좁혀가는 마음을 알아채 버려서 당황스럽기까지 했거든.
그래서 제법 오래 고민했던 것 같아. 너를 대하는 마음은 ‘설렘’과는 거리가 있는데, 너와 함께하고 싶은 것들은 자꾸만 늘어가서 난생처음 겪는 유형의 마음이었거든. 계획되어있던 내 미래에 네가 없는 일상이 점점 상상이 가질 않아서, 내 마음을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 너와 함께 있으면 자꾸만 하늘을 보고, 눈 내리는 저녁을 좋아하고, 가고 싶다고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해. 이건 사랑일까.
근데 어느 누가 그러더라고. 설레면 사랑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니어야 사랑이래. 그 사람 얼굴조차 보기 싫은 순간에도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사랑이래. 이 사람이 잘생겨 보이는 하루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아주 이례적인 순간이 찾아와서 ‘내가 그래서 널 좋아했구나’라고 생각하다가도, ‘근데 지금은 왜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제야 사랑은 시작하는 거래. ‘내가 이 사람이랑 평생 같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할 때, ‘내 화병은 어쩌지’라는 고민이 든다면 사랑이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엔 막 웃었어. 그건 그냥 전우애 아니냐면서 말이야. 내가 그동안 겪어온 사랑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에 난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웠어. 그냥 오래 연애를 하는 한 동생의 이야기 정도로만 듣고 있었지. 그런데 그 동생이 끝에 그러더라고.
근데 그런건 있어. 내가 계획하는 모든 미래의 순간에 얘가 없다는 설정은 없어. 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얘가 아무것도 도움이 안 되어줘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 못 하거나 내 편이 아니어도, 얘가 그 모든 순간에 내 옆에만 있다면 그거로도 충분해
‘내가 왜 이런 사랑을 시작했지’라는 우스갯소리에 더는 웃을 수 없었던 내 머릿속에 네가 떠올랐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이 마음은 지금 사랑일까. 너무 소중해지고야 만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나는 끝내 마음을 삼킬 생각이지만, 그래도 궁금하기는 해. 너의 마음에 나는 어떤 형태로 존재할까. 너도 네 마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까. 아니면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
오늘 밤은 네가 내 꿈을 꾸기를. 그래서 '설마 내가?'하는 마음으로 날 떠올려주기를.
오늘도 반가웠어. 그럼, 내일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