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게

: L에게

by 홍연

L에게



안녕, L. 집으로는 잘 돌아가고 있어? 날씨가 많이 춥더라. 너와 헤어지고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더 길고, 차게 느껴져서 네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 하지만 너도, 나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정이 많아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지는 길. 흘러가는 시간은 빠르고, 다가오는 시간은 야속해. 조금 더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은 이미 나를 가득 채웠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서글프고도 무기력한 헤어짐.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네가 내 일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일상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오늘의 헤어짐은 서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헤어짐이더라고. 그저 내 일상 같은 존재가 되었을 뿐이지 우리에겐 돌아가야 하는 자리가 있었던 거지. 사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나아갈 수 있는 관계가 좋다고 하던데, 나는 과연 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뭐든 너무 의지하면 좋지 않다고 그랬는데, 나는 언제부터 너에게 이렇게 의지하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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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돌아가야 할 일상이 이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 지금 이 시간들은 우리에게 잠시 쉬어가는 기간이고, 3월이면 다시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지겠지. 어쩌면 서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을지 몰라. 그때가 되면 너를 일상으로 여겼던 내 마음도 흐려질지도 모를 일이야.


나는 다시 공부를 할 거고, 돈을 벌어야 한다며 일을 찾아다니고, 회의에 참석하고 난 뒤 회의록 작성으로 머리를 뜯다가,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는 그런 정신없는 나날들을 살아가겠지. 분명 이와 별 다를 바 없는 지난날들에 너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를 거 같아. 과연 이번 나의 일상에 네가 없을까. 나는 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은 너를 찾지 않을까.



일상(日常)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데, 너를 생각하는 일만큼은 이미 나에게 일상이 되어버려서, 이번엔 조금 다른 일상이 시작될 것 같아. 나는 어김없이 치열하고 바쁜 나날을 살아낼 테고, 그러다 지쳐 엉엉 울어버리기도 하겠지만, 정말로 지치는 어느 날에는 훌쩍 너를 찾아가 버릴 것만 같아. 홀로 어쩔 줄 몰라 정처 없이 걷거나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게 아니라 충동적으로 너를 만나러 갈 거 같아. 아니, 그럴 거야.



그리고 널 만나는 순간 시시콜콜 늘어놓고 싶었던 우울한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또 깔깔거리며 웃다 돌아오겠지. 역시 너는 내 충전기라고 말하면서. 다시 힘을 얻어 치열한 삶 속으로 뛰어들 거야. 꼭 옆에 있다고 일상인 건 아닌가 봐. 지금 이 순간까지도 네가 있을 미래를 떠올리는 걸 보니까 말이야.



안녕 내 일상. 봄에도 함께 하자. 그리고 여름에도, 가을에도. 너는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욕심나는 일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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