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에게
Y에게
안녕, 오랜만이야. 15년 만이네. 잘 지내고 있니? 아니, 그 전에, 너는 나를 기억은 하니. 보통 그러더라고. 상처를 받은 사람은 기억하지만 준 사람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러니 아마 너는 나를 까맣게 잊지 않았을까. 내내 너를 기억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말이야. 난 잘 지내지 못했는데, 너는 승승장구하며 잘 지내기만 했을 것 같아서 편지를 써 내려가는 지금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해.
얼마 전에 애니메이션을 하나 봤는데 말이야, 우연하게도 그게 학교 폭력에 관한 내용이더라고. 정말 뻔하디뻔한 감정의 흐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은 왜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걸까. 자각한 이후에도 왜 이유 없는 미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왜 멈추지 못하는 걸까.
당하는 이들은 왜 그들에게 분노하지 못하는 걸까. 그 분노의 화살은 어째서 스스로를 향하고야 마는 걸까. 그 여자아이는 기어코 난간 위로 올라서고야 말았어.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이들을 볼 때는 헤실하게 웃던 얼굴이 잔뜩 굳은 채로 말이야. 난 그 모습에 자꾸만 내가 겹쳐 보여서 보는 내내 펑펑 울고야 말았어. 흉터는 하얗게 샌지 오래인데 왜 난 여전히 아픈 걸까.
폭력은 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폭력은 그 흔적을 남긴다. 나는 물리적 폭력도, 언어적 폭력도, 사회적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믿어왔어. 동시에 내가 생각지 못하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는가 늘 조심스럽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모르는 새에 생채기를 남겨왔겠지. 그럼 나는 너와 무어가 다를까.
결국 나 또한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고개를 숙여. 나의 원망은 덧없고, 어쩌면 끝내 너에게 닿을 수 없겠지만, 너에게 꽃을 전해. 델피니움이라는 꽃을 알고 있니? 흰색부터 파란색까지 푸르른 빛을 띠는 델피니움은 그 모양이 가볍고 자유로워 마치 들꽃같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한 델피니움의 꽃말은
‘왜 당신은 나를 싫어합니까’
우리 이제 화해할 수 있을까. 나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너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 어느 마지막 지점으로 가자. 알 수 없는 미래 그 어딘가에는 그런 형태의 미래도 존재하지 않을까. 푸르게 흔들리는 델피니움 사이에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