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에게
L에게
오늘은 비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어쩐지 비는 내리지 않고 구름만 잔뜩이네. 언젠가부터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매일 변화하는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겨. 나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지난 하루는 어제 바라본 하루와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내일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내 앞에 펼쳐질 나날들을 예상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이지.
우리 모두 우주 앞에서는 먼지와 다를 바가 없는 존재인데, 살아감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무어가 대수일까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어. 내가 남기는 흔적은, 크게 보면 그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는 무엇일 테지.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도, 떠난 이후에도 사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나면 더욱 크게 느껴져. 사실 나의 흔적은 별것 아니라는 사실이 말이야.
그런데도 우리는 누군가 떠나고 날 때마다 그 빈자리에 크게 동요하고 크게 슬퍼한다. 사실 조금 지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겠지만 우리는 매번 크게 흔들려버리고 말아.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었다. 어떤 순간에는 흔들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에 흔들리기도 했고, 어느 순간에는 맥없이 흔들려버리기도 하며. 그리고 다시 거리에 나오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괴리감에 무너져 버리기도 했어.
그쯤 되니 궁금해지더라고. 나도 어느 날엔가 세상을 떠나면 누군가는 크게 흔들려 줄까. 그게 의무감이든 아니든.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잠시나마 누군가 기억해주고 흔들려 준다면 나의 의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왜 울어야 할까. 이별은 아쉽지만, 그 끝에서 내가 그들에게 남기고 싶은 건 슬픔이 아니었는데. 나의 마지막은 함께 추억하며 웃을 수는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마음 끝에 걸렸다.
그래서 말인데, 나의 장례식은 조금 특별하면 어떨까 생각했어. 나는 드레스 코드를 정할 거야. 내 장례식에 참여하는 이들은 검고 어두운 옷이 아니라 밝고 화사한 옷을 입었으면 해. 흰 옷도 좋고, 파스텔 톤은 어떨까. 아, 물론 육개장을 먹을 때는 조금 조심해야 할 거야. 나의 이 말을 들었을 때 어처구니없어 하던 너의 표정을 기억해. 하지만 동시에 너는 웃었지. 그래서 나는 이어 말했어.
“내 장례식 장에는 곡소리가 아니라, 내가 생전에 좋아하던 노래가 나왔으면 좋겠어.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플레이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 둘 거야.”
어쩌면 허황되어 보일 수도 있고, 가볍고 경박해 보일 수 있는 소망이지만, 나는 모든 이별이 무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나는 한 사람씩 떠나보낼 때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했거든. 깊은 슬픔에 내 일상이 무너져도 나는 내 삶을 살아나가야 했고, 거짓 슬픔으로 눈물을 연기 할 때에도 그 억지스러움이 싫었어. 떠난 사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해. 이별 심리학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장례식이란 건, 한 편으로는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장이라고.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지. 꾸역꾸역 살아나가며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나는 떠나도, 살아있는 너희들은. 내가 사랑하는 너희들은 너희의 삶을 무탈하게 살아나갈 수 있기를. 나의 장례식은 나를 위함이 아니라 진정으로 너희를 위한 장이 되기를. 억지 눈물을 흘릴 필요 없이, 혹은 눈물 흘릴지언정 ‘아 정말 너답다’ 하며 절절하게 나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이런 이별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이건 그냥 너와 함께 있으면 한없이 유치해지고 풍부해지는 나의 우스운 상상이었어. 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사실이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우리 모두 떠난 이는 흘려보내고,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렇게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오늘도 수고했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