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에게

: L에게

by 홍연

L에게



밤마다 나의 곁을 지켜주는 L. 간밤에는 내가 몸이 아파 너도 덩달아 고생이 많았지. 내가 느끼기에도 뜨끈하게 오른 열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너도 더워했잖아. 그러면서도 한 번씩 내 이마 위로 덮여오는 걱정스러운 손길이 싫지 않아서 난 깼다가도 자꾸만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



부쩍 들어 꿈을 꾸는 일이 잦아졌다. 악몽에 자주 시달린다는 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신호라고도 하던데, 꿈에서 놀라 깨고 숨을 몰아쉴 때마다 생각이 많아져. 한참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왜 이제 와 지난 일들에 시달리고 있는 건지. 지난날들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편안하고 많이 쉬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몸은 그렇지 않나 봐. 그렇다고 마냥 늘어져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내 처지에 그냥 한 번씩 웃어버리는 수밖에.


때로는 놀라 눈을 뜨고 어둠이 깔린 방을 둘러보다 문득 혼자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을 때면 낯선 외로움이 밀려와 서글퍼지고 말아. 하지만 내게는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 아직은 무너져서는 안 되니까. 그런 마음으로 금방 다시 잠이 들었어. 이제는 잠에서 깨 몸을 뒤척이는 나를 부드럽게 안아 등을 다독거리는 네 손길에 안심하며 잠이 든다. 한 사람이 삶에 들어오는 일은 얼마나 커다란 일인지.



너와 함께 하고서부터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아졌어. 해야 하는 일투성이였던 내 삶에 하고 싶은 일이 늘어난다는 건 큰 기쁨이더라. 내 삶의 주도권이 내게 돌아오는 기분이랄까. 더불어서, 과거를 되새기는 일은 괴로운 일인 동시에 지금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해. 감히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누리고 사는 나는 얼마나 사치스러운 행복에 겨워 있는 사람인가. 나는 그렇게 균형을 잡으며 하루하루에 조금씩 욕심을 내고 있어.


가끔은 그만 징징거리고 더 악착같이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해. 이건 오랫동안 혼자 지낸 나만의 습일 거야. 그런데, 홀로 나아가던 내 옆에 네가 온 뒤로는 자꾸만 난 아이가 되고 말아. 사람이 자꾸 유치해지고, 더 욕심을 내고, 약한 척하고 싶어져. 내 스스로도 이런 나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말이야.



빨리 나아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나아가려면 함께여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뒤처졌다고 생각해온 나는 빨리 가야 했어. 그 과정에서 내 옆에 함께 발맞춰 주려던 이들을 숱하게 외면하고 난 그저 빠르게, 악착같이 앞을 향했다. 금방 지치고 말 거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내게는 독기만이 남아서 그런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았거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내 곁에 지켜야 할 이들이 많아지고,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그러다 너를 만났다. 빠르게 나아가기만을 바랐던 마음은 주춤거리고, 틈만 나면 너에게 달려가 안겨버린다.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안겨 오는 나를 안아주는 네 품은 또 얼마나 따뜻한지. 이 온기를 알아버렸으니 나는 영영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맞벌이였던 우리 집에서 나는 늘 어른스러운 아이여야 했어. 부모님께서 그러기를 강요하신 것은 아니었으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라게 되더라고. 아프면 혼자 병원에 갔고, 약국에 갔어. 가끔 열이 많이 오를 때면 혼자라는 사실이 서러워 눈물이 터져버린 날도 두어 번인가 있었던 것 같지만, 늘 그래왔던 삶이었으니까 견딜 수 있었어. 하지만, 이제 나는 홀로 남아 있음을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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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찬 편인 내 손을 잡는 너의 따뜻한 온기를 좋아해. 열이 끓는 내 이마 위에 얹어지는 너의 서늘한 온기를 사랑해. 빠르지는 않더라도,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려 해. 스스로를 전혀 챙길 줄 몰랐던 나를 대신해 챙겨주느라 고생하는 너를 보며, 이제는 나도 좀 챙겨볼게. 너의 손길 속에서 나는 또 이렇게 성장해간다.


편안한 새벽이야, 이제 우리 다시 잠자리에 들자.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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