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어, 충분히

: H에게

by 홍연

H에게


새 학기가 시작되었구나. 여전히 바쁜 내게 더 바쁨을 선사하는 3월을 맞이하며, 나는 오늘도 달리고 있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 이렇게 지내게 되겠지.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에 비하면 그렇게 바쁘지 않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인데 말이야. 얼마 전에 알아버린 사실이 하나 있어. 난 전보다 덜이 아니라, 더 바빠졌더라고.


그동안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난 막연하게 ‘전보다는 나아’라고 말하고 다녔고, 그렇다고만 생각했어. 분명 전보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아졌고, 해야 하는 일들 사이로 하고 싶은 일들도 챙기고 있는 현재를 살고 있어. 하지만 우연찮게 과거의 내 시간표와 지금의 시간표를 비교해 볼 기회가 생기고, 지금의 내가 훨씬 빡빡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야 요즘의 내가 왜 그리도 자주 지치는지 알겠더라고. 다른 게 문제일 줄 알았지만 실은 그저 쉴 시간이 부족해 피곤했을 뿐이었던 거야.


나는 언제부터 나자신에게만 엄격한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 실은 그 시작은 알 것 같은데 어째서 점점 더 빡빡해지는지 모르겠어. 제법 많은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 같은데, 왜 나는 스스로가 지독하리만큼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지는 걸까. 더 무언가를 하기에는 벅차서 이내 그만둬 버리고, 그렇게 포기한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요즘. 우연히 스케줄러를 보고 나서야 알았어. 내게는 정말로 더이상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더는 능력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쉬어도 피로가 사라지지 않고, 몸이 아픈 곳이 많아지고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지치는 순간은 자주 찾아오고, 한 번 아프고 나면 다 낫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려. 기계도 쉼 없이 가동하면 고장이 나는데, 기계도 아닌 나는 나를 왜 쉬지 않고 채찍질 하고 있는 걸까. 머리로는 알면서도 멈춤이라는 건 내게 거대한 불안을 동반하는 일이라 감히 멈출 수 가 없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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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필요한 말은 ‘잘하고 있어’라는 걸 알아. 늘 인정 욕구에 메말라 있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인정은 스스로의 인정일 거야. 어쩌면 그 한 조각이 부족해서 나는 늘 타인의 인정으로나마 결핍을 채우려 애쓰는 삶을 살고 있는 거겠지. 갈 길은 까마득하게 멀고, 나는 이미 지쳐버렸다. 나는 나를 과연 쉬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 나아가도록 해야 하는가.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그것을 결정하기까지 끝없는 갈등을 이어가겠지만, 확실한 건 나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너도 알잖아. 더는 악착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지금처럼만 해도 괜찮아. 더 하려고 욕심내다 지쳐버리지 말고, 딱 이만큼만 하자. 또 언젠가 뒤돌아보면 훌쩍 나아가 있는 네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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