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 J에게

by 홍연

J에게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찾아와.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지고, 평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들에 괜스레 예민해지는 날들. 특별히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지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어서 그저 하염없이 무기력해지는 시간들.


나는 그런 순간마다 늘 같은 질문을 해.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라고. 바쁘게 달려왔고, 하고 싶은 일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지만, 이상하게 공허할 때가 있어. 무언가를 이뤄도, 작은 성취를 쌓아도, 그 순간뿐이야.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더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몰아세우곤 해. 그렇게 쫓기듯 살아가다 보면, 정작 내 마음은 점점 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돼.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위로를 찾아. 사실 위로라는 게 대단한 건 아니잖아. 가끔은 그저 ‘너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말 한마디가 전부가 될 때도 있고, 따뜻한 눈길, 혹은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어.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생각해.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위로가 될 수 있을까?’라고.


얼마 전, 버스에서 우연히 본 풍경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 그날 나는 꽤 지친 상태였어.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고, 머릿속은 끝없는 할 일로 가득했어. 힘든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모든 걸 내려놓고 그냥 멍하니 있고 싶었어.


그러다 어느 정류장에선가 버스 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타셨어. 자리가 없었는지 손잡이를 붙잡고 서 계셨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어떤 학생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라. 그리고는 할머니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할머니는 처음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학생이 밝게 웃으며 다시 권하자 조용히 자리에 앉으셨어.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고맙다"라고 하셨고, 학생은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작은 배려가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거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는 순간에, 누군가는 다정한 손길을 내밀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문득 생각했어.



'나는 저 학생처럼 누군가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일까?‘



잠시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 나는 언제 누군가를 위로했던 적이 있었을까?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그러다 얼마 전, 너에게 밤늦게 전화가 걸려왔어. 평소라면 짧게 용건을 이야기하고 끊었을 텐데, 그날따라 너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했어. 평소처럼 씩씩하게 굴고 있었지만, 용건은 말하지 않고 어딘가 핵심을 피해 말하고 있는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괜찮냐고,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어. 그러자 갑자기 조용해지더라. 통화가 끊어졌나 했지만, 아니었어. 너는 울고 있었던 거야. 한참 후에야 너는 흐느끼며 말을 꺼냈어.



"언니 나 너무 힘들어. 너무 무서워.“



그 말에 나는 차분히 너의 이야기를 기다렸고, 한참을 가만히 들었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너무 가볍게 들릴 것 같았고, 네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더듬어 보기까지 나도 시간이 필요했거든. 그래서 그냥 가만히 들어줬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때까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결국 통화를 끊을 즈음 넌 이렇게 말했어.



"고마워. 언니랑 이야기하고 나니까 이제 좀 나아졌어."



그때 알았어. 꼭 대단한 말을 하지 않아도, 완벽한 위로가 되지 않아도, 그냥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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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누군가의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일까. 지친 하루 끝에 ‘그래도 괜찮아’라는 마음을 줄 수 있을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조용히 건네는 손길이, 때로는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내가 힘들 때마다 따스한 말과 온기를 건네주던 사람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쉼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완벽한 위로가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나는 살아가. 아직은 서툴고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조용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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