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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성형은 네 아빠 때문이다.

by 정희승

건강검진받은 엄마는 유방 초음파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다고 했다.


큰 병원에서 재검사를 해보라는 소견을 받았다는 엄마는 신촌 세브란스에 예약을 하고 내게 전화했다.



"같이 가줄 수 있냐?"



덜컥 겁이 나고 걱정되어 예약날을 메모하고 미리 친정으로 향했다.


기다리던 엄마와 마곡에서 신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성산회관을 지날 때 엄마가 말한다.



"여긴 예전이랑 별로 달라진 게 없네."



나는 목동 토박이다.


다섯 살부터 목동에서 살았으니 목동은 내게 고향이다.


안암동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지만 다섯 살 이전 기억이 없으니 내 기억은 목동이 전부다.



외갓집은 보문동이었고 사촌이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 때 장위동으로 이사했다.


큰 이모는 고대 앞 골목에서 하숙집을 했고 작은 이모는 보문동 시장 안에서 수선집을 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가는 외갓집을 가려면 목동에서 성산회관에 내려 종로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종로에서 다시 보문동 가는 버스를 갈아탔으니 외갓집 가는 길은 족히 두 시간 정도 걸렸을 거다.



엄마 말을 듣고 보니 성산회관 버스 정류장 도로는 예전과 별다른 발전이 없는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낮은 건물에 오래된 간판 상점들이 있고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옛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외갓집 가는 날이 좋았다.


친할머니와 다르게 외할머니는 다정하고 오백 원이든 천 원이든 갈 때마다 용돈을 챙겨주셨다.


다정한 외할머니도 좋았지만 외삼촌과 외숙모는 내 부모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하게 만드는 부러운 분들이었다.



특히 외삼촌.


키 크고 잘생긴 외삼촌을 나는 노주현 배우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 희승이 왔냐?"



볼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고 예뻐해 주는 외삼촌은 꿈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아빠라고 생각했다.


외삼촌 딸인 세 살 아래 사촌은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아이였다.


놀아주지 않는 오빠들 밑에서 자란 나는 사촌을 만나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수선집 하는 외숙모는 딸을 공주처럼 꾸며주곤 했다.


두 분을 닮아 웃는 얼굴도 예쁜 사촌은 실크 블라우스도 많고 치마도 여러 벌이었다.


나는 치마보다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엄마는 영등포 시장에서 티셔츠, 반바지 아니면 청바지로 계절마다 두세 벌 옷을 사서 입히곤 했는데 커서도 멋 낼 줄 모르는 나는 옷이 없다고 엄마에게 투정하는 쪽은 아니었다.


엄마가 사주는 옷을 결혼 전까지 입었으니 멋도 모르고 스타일도 없는 무색무취였다고 생각한다.



치마도 있었지만 나는 치마보다 바지를 선호했다.


오빠들과 함께여서였는지 몰라도 엄마는 조신하진 못한 내가 치마 입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사촌 동생이 입는 하늘하늘한 실크 블라우스는 봉긋한 퍼프소매 때문인지 동생을 더 귀한 공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똑같은 티셔츠에 반바지 입고 짧은 커트 머리였던 나는 동생이 마냥 부럽고 언니인 내가 마땅히 모셔야 할 공주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생각을 하며 세브란스 정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엄마가 말한다.



"재검사해도 별 다른 소견이 없을지도 몰라.

사실 엄마 가슴 수술해서 초음파 검사가 안 나오는 거야."



도대체 가슴 수술을 언제 했단 말인가.


내가 태어나기 전이란 말인데 그 시대에 가슴 수술이 있었나 의아했다.


혼전 임신으로 스무 살에 결혼해서 큰오빠를 출산하고 2년 후 작은 오빠가 나왔는데 도대체 언제 했을 것이며 모유 수유하는 엄마가 왜 했어야 할까 이해되지 않았다.


놀란 눈으로 멀뚱히 보는 내게 은밀한 비밀을 고백하듯 엄마는 말했다.



"큰오빠 낳고 모유 수유하니까 가슴이 처지는 게 당연한 걸 아빠가 뭐라는 줄 아니?

얼굴만 어리지 가슴은 할머니 같다고 하는 거야.

그 말이 너무 자존심 상해서 할머니 몰래 했었지.

아무도 모른다.

너한테 처음 고백하는 거야.

그래도 네 아빠가 성형 수술에 관대해서 그건 편하더라."



헐. 할머니 가슴 같다는 아빠 말에 가슴 수술을 했다고? 그렇게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고?


엄마의 외모지상주의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큰오빠 낳고 했으면 1969년인데 그 시절 가슴 성형도 신기하지만 그 돈을 준 아빠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정말 외모에 관심이 많구나."



"그러니까 나는 네가 이해되지 않는 거야.

넌 어쩜 나를 하나도 안 닮았어."



엄마의 빈정거림이 나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엄마 닮아 외모지상주의였으면 없는 돈에 옷 사야지, 성형해야지, 꾸미느라 정신없었을 것 아닌가.


안 닮아 천만다행이지.


나는 정말 엄마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게 사실이다.


다리가 긴 것 말고는 내가 엄마를 닮은 게 뭐가 있을까?


엄마는 얼굴도 주먹만 하고 어깨도 좁다. 머리카락은 가늘고 얼굴이 동그랗다. 야리야리한 엄마 몸매는 요즘에 태어났다면 아이돌 체형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어떤가.


얼굴은 길고 어깨는 넓다. 등판이 넓어 때밀기 힘들다며 엄마는 종종 목욕탕에서 짜증까지 냈다.


넌 여자애가 아빠 닮아 그렇다고, 엄마를 닮아야 하는데 계집애가 아빠 닮아 떡대가 좋다고, 장군감이라고 놀렸다.


쓸데없이 오빠들은 엄마를 닮아 둘 다 어깨가 좁고 얼굴이 작다.


오빠들보다 더 힘 있어 보이는 나를 오빠들은 매일 장난치며 놀렸다.



"희승이 어깨가 부럽다."



사랑받고 사랑했던 오빠들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우선 그날 엄마의 고백은 신나 보였다.



"네 아빠가 엄청 밝히거든."



이건 또 무슨 장르인가.


성형 고백에서 갑자기 왜 성인물로 넘어오는지 모르겠다. 듣고 싶지 않은 부모의 성인물 이야기.


알고 싶지 않은 부모의 성관계 이야기를 상상하기도 싫고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신혼 때였는데, 사업한다고 돈 다 끌어다 공장에 투자하고 남의 집 세 들어 살 때였지.

쪽방 같은 방이 두 칸 있었는데 옆 방에 사는 처녀가 술집 나가는 여자였어.

칭얼대는 아기 모유 먹이고 있는데 아빠가 뭐라는 줄 아니?

옆 방 여자랑 하고 싶다는 거야.

그게 마누라한테 할 소리니?

출산하고 모유 먹이는 내가 여자로 안 보였던 거지.

내가 얼마나 자존심 상했으면 가슴 수술을 했겠니.

네 아빠가 그렇게 밝히는 남자다."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세상에. 이런 말을 딸에게 하다니.


당장 시원한 냉수로 울렁거리는 속을 게우고 싶었다.


그런 놈이 아빠라는 건 알고 있지만 옆 방 여자와 자고 싶다고 말하는 미친놈 말을 딸에게 전하는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집 밖에 나오면 우아한 백조처럼 보이려 애쓰는 엄마는 밝히는 남편 단속을 위해 가슴 수술까지 도전하는 용기 있는 여자라 해야 할까, 그런 놈이 정상이 아닌 것도 모르는 무지한 여자라 해야 할까.


부모로서 자식에게 인성, 도리를 가르치기보다 부모의 불행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겨 효도해야 하며 친구처럼 보호자처럼 속앓이 한 속사정까지 알아주길 바라는 엄마의 이중성까지 더해져 속이 더 편치 못했다.


나는 어디까지 엄마를 이해하고 안아주고 보듬어주어야 하는 걸까.



신나서 아빠가 밝히는 남자라고 떠드는 고백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나는 미리 가서 대기해야 한다고 걸음을 재촉했다.


밝히던 부모의 성생활이 떠올라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며 구역질을 겨우 참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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