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서 자주 듣던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잊을만하면 다시 시작되는 돌림 노래였다.
그는 경북 봉화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당 선생이었던 할아버지는 그가 세 살이 되던 해 길바닥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내가 아빠 없이 자라 아빠 정을 모른다."
돌림 노래 끝자락은 언제나 같았다.
아빠 없이 자라서 너희에게 아빠 정을 못 주는 거라고.
그는 모르는 아빠를 그리워하진 않았다.
그리움 대신 홀로 자란 자신의 인생이 가여웠다.
"새아빠에게 머슴으로 살면서 매질이 무서워 중학생부터 혼자 살았다.
혼자 사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엄마 손잡고 들어간 새아빠 집은 잘 사는 집이었다.
엄마와 둘이 살던 집보다 훨씬 큰 집이지만 그는 그 집 머슴으로 살아야 했다.
이유 없이 맞으며 새아빠 눈치를 봐야 했고 자신의 행동이 거슬릴까 봐 두려워 늘 심장이 뛰었다고 한다.
"안방에서 밥 먹는 새아빠와 엄마를 보며 난 늘 혼자 추운 마루에 있었다."
새아빠는 그와 겸상을 하지 않았다.
그들 밥상에 있는 생선과 때때로 올라오는 고기가 먹고 싶었지만 마루에서 혼자 먹는 자신은 냄새만 맡아야 했다고 한다.
새아빠의 학대를 방관하는 엄마에게 그가 느낀 배신감은 얼마나 컸을까.
할머니를 투명 인간 취급하고 할머니가 먹고 싶다는 삼겹살을 사주지 않는 아빠가 이해되면서도 이해되지 않았다.
손녀 눈에는 그저 복수하는 아들로 보였으니까.
구연동화 같은 아빠의 불쌍한 어린 시절 이야기 보다 아빠에게 무시받는 우리 집 투명 인간 할머니가 더 짠했으니까.
"책상 하나, 이불 하나가 전부였던 쪽방에서 아빠는 복수심으로 공부했다."
매질에서 벗어난 쪽방 생활이 좋았을 리 없지만 그는 공부해서 성공하는 모습으로 복수하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새아빠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가난하고 못살던 시절, 길에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시절.
가난해도 자식을 돌보며 안아주는 엄마 품에서 자랐다면 아빠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새아빠 몰래 아들에게 고기반찬을 남겨주는 엄마에게 자랐다면 아빠는 달라졌을까.
사랑받지 못하고 복수심으로 자란 아빠는 언제부터 괴물이 되었을까.
보부상하는 엄마를 밤까지 기다리던 세 살 때부터였을까.
어두운 방에 혼자 있던 기억만 있다는 아빠는 서서히 괴물이 되고 있었을지 모른다.
사랑받고 안정되고 인격이 형성되어야 하는 어린 시절을 어두운 방 안에서 방치되어 불안과 공포부터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모르는 비인격 상태가 비인격인지 모르며 성장했을지 모른다.
사랑, 감사, 도덕, 윤리,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고 알아야 할 감정과 의식을 모른 채 책으로 세상을 배우며 인격을 상실했을 것이다.
부모를 보면 자식이 보인다.
아빠를 보며 내가 자식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달라야 했다.
유전자든 무엇이든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비인격으로 자란 아빠여도 나는 달라야 했다.
겉과 속이 다른 아빠를 보며 겉과 속이 같은 나를 만들었다.
사랑, 감사가 없는 아빠를 보며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키우려 노력했다.
자기애 강한 아빠를 보며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아빠를 보며 모든 것을 거부했다.
가난의 대물림도 결핍의 대물림도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