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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너만 좋아해.

by 정희승

"엄마, 아빠는 너만 좋아해."



무심하게 툭 던진 큰 오빠 말을 들었을 때 난 어려서 몰랐다.


그게 무슨 말인지.


왜 그렇게 오빠가 생각하는지 알지 못했다.


국민학생이 되면서 오빠의 볼멘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딜 가도 막내만 데리고 다니던 부모 모습이 오빠에겐 서운했을 것이다.


명절 아닌 평일날 엄마와 외갓집을 동행하는 자식은 오직 딸뿐이었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빠와 손잡고 외출하는 날은 드문 일이기에 기억한다.


아빠가 말한 친구는 딱 한 분이었다.


충무로에 사는 친구.


친구라고 하기엔 아빠보다 몇 살 어렸던 것 같고 두 사람은 서로 친구라기보다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 선후배 사이 같았다.


어떤 관계로 만난 인연인지는 모른다.


오래된 인연이고 그분 아들이 의사라는 말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보다 아들이 의사라는 명칭이 그분을 대신하고 있었다.


명보극장이 있고 한국 영화의 메카라고 불리던 충무로,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충무로를 어린 나는 그저 아빠가 문방구하는 동네로 알고 있었다.


순하고 착한 나는 부모 말에 거역한 적이 없다.



"아빠랑 충무로 가자."



엄마 따라가는 외갓집은 설레는 동행이지만 아빠 따라가는 충무로는 속마음을 감추고 애써 웃으며 동행하는 고역이다.


잡기 싫은 아빠 손을 잡고 버스 타고 아빠 무릎에 앉는 것도 답답하고 싫었다.


재미도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지루함을 참지 못했다.


문방구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도 잠시 뿐이다.


문방구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났다 돌멩이로 땅을 긁다 던졌다를 수십 번 반복해도 아빠는 집에 갈 생각이 없다.


몇 시간을 지치게 기다리다 보면 아저씨가 말했다.



"얌전히 혼자 잘 노는구나."



지폐 한 장을 용돈으로 받으면 꾸벅 인사드리고 이제 집에 가는구나 속으로 신나 했다.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아빠는 은밀하게 나만 한우 갈비라도 사주는 것처럼 말하곤 했다.



"충무로에서 제일 맛있는 냉면 먹고 가자."



아홉 살 꼬맹이가 냉면 맛을 알까?


냉면보다 떡볶이를 먹고 싶었을 텐데 아빠가 좋아하는 냉면을 먹으며 딸 한 그릇 더 사주는 게 아빠에겐 엄청난 특혜였나 보다.



"집에 가서 말하지 말고."



충무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냉면 맛은 기억도 없고 육수가 맛있어서 달큰한 육수만 계속 홀짝거렸다.


먹기 싫은 냉면을 먹고 잡기 싫은 아빠 손을 잡는 외출이 오빠들에겐 부러움이었구나.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하게 안아주는 보살핌이 고팠던 오빠들에겐 막내만 안아주는 아빠의 사랑이 필요했을 거다.


비릿한 미역처럼 비린내 나는 사랑인지 모르는 오빠들은 역겨움을 참는 동생이 부러워 막내를 외면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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