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맞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빠가 아빠라고 느꼈던 순간이 내게도 존재한다.
스무 살 시절, 늦은 밤도 아닌 저녁 8시 조금 넘은 시간.
엄마는 세탁소에서 옷을 찾아오라고 내게 부탁했다.
10분 거리 골목길을 지나 세탁소에 맡긴 옷을 들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어둡지 않다.
전봇대가 여러 개 있기에 그 길이 좁다거나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 길을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다.
아침, 저녁 늘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골목이니 아무 의심 없이 걷고 있었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갑자기 훅 한 남자가 바짝 붙어 마당으로 따라 들어왔다.
"소리치면 찌를 거다."
마당은 어둡다.
안에서 불을 켜지 않으면 현관에 불을 켤 수 없다.
남자 얼굴도 모른다.
처음 보는 사람이고 나이는 젊어 보인다는 거.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알 수 없다.
남자 손에 카터칼이 들려있고 그 남자는 내 가슴만 보고 있다.
가슴을 움켜쥐려는 남자 손을 뿌리치고 소리쳤다.
"아빠!"
절실하게 아빠를 불러본 적이 있었던가.
처음이었다.
아빠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순간이.
스무 살 인생에 단 한번 그때가 처음이었다.
소리에 놀란 남자는 가슴을 잡지 못하고 칼을 내밀었고 난 뒤로 물러나며 칼에 맞았다.
소리침과 동시에 현관 불이 켜졌고 아빠와 엄마가 뛰어나왔다.
남자는 대문을 열고 도망쳤다.
가슴에 칼을 맞고 나는 벌벌 떨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괜찮아. 괜찮아."
아빠는 나를 안고 엄마에게 빨리 청심환을 사 오라고 했다.
아빠 등에 업혀 방에 들어온 나는 그때 아빠 품이 따뜻하다고 처음 느꼈다.
경찰에 신고하고 물을 떠 오고 베개를 꺼내어 나를 눕히던 아빠 얼굴은 내 얼굴만큼 창백했다.
물을 주고 약을 먹이는 아빠 품이 안전하고 따뜻한 생소한 느낌.
칼에 베인 상처에 약을 바르고 연고를 발라주는 부위가 하필이면 가슴이라 싫었지만 벌벌 떨며 신체 부위까지 신경 쓸 수 없었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스치듯 칼날에 베인 상처는 작은 자국만 남기며 흉터로 남았지만 그날 낯선 남자의 흉기보다 아빠의 품이 따뜻하다는 생소함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늑대로 변하던 아빠보다 낯선 남자의 칼이 더 무섭다는 걸 스무 살 우리 집 마당에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