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은 공포였지만 필요한 공포였다.
엄마는 그 날이후로 야간 공장을 나가지 않았다.
낮 근무로 바꿨고 아빠 회사에서 부품을 받아 집에서 일했다.
마당에 천막을 만들고 부품 찍는 기계를 회사에서 가져왔다.
엄마가 집에 있다니.
8살부터 반나절만 집에 있던 엄마가 한나절이나 있다니.
공포가 준 선물이었다.
그 밤이 사람이 늑대로 변하는 밤을 만들진 못했지만 늑대는 엄마가 없는 낮에도 출몰했고 기회를 노렸다.
방문에 없던 못이 박혀있는다는 걸 엄마는 안다.
빨랫줄로 문고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엄마는 궁금하지 않을까.
왜 내게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을까.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 두려웠을까.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아서 외면을 선택한 것일까.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외면했다는 것을.
안개에 덮여있던 기억이 안개를 걷고 나오려 하면 나는 도망쳤다.
기억과 마주칠 자신이 없어서 도망치면 기억은 꿈에서 나타나 나를 짓눌렀다.
"너 중학교 때 아빠가 실수한 거 이야기하는 거야?"라고 엄마가 말했을 때.
수년을 덮어두었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외면하는 엄마가 내 엄마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자발적 고아를 선언했지만 부모를 버렸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는 숨만 쉬는 연체동물이었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연체동물.
흐느적거리는 해파리가 되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살 수 없어 눈물이 나고, 비 오는 창밖을 봐도 눈물이 났다.
올림픽대로에서 친정으로 향하는 길이 나와도 눈물이 나고 엄마가 좋아하는 회냉면 집을 지나쳐도 눈물이 났다.
"추석이 다가오는데 전화 한 통 없네. 형님들 이해가 안 돼."
전화 없는 장모님도 이해할 수 없지만 형님들까지 연락 없을 줄 몰랐다는 남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몰랐으니까. 이렇게 버려질지 몰랐으니까.
엄마 생신도 어버이날도 추석도 새해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원래 나는 그 집에 없었던 것처럼.
50년 만에 사라진 딸을 동생을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