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집에 있는 유무에 따라 행동이 달랐다.
엄마가 집에 없으면 불안에 떨었고, 집에 있으면 안정됨에 편안하고 행복했다.
특별히 엄마가 내게 살갑지 않아도 그냥 엄마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학교가 끝나고 쏜살 같이 집으로 갔고
엄마가 집에 없으면 친구 집으로 하교했다.
엄마가 올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빠가 언제 올지 모르기에, 엄마가 올 때까지 친구네서 대기했다.
그 날이후 엄마에게 들볶인 아빠는 낮에 출몰하는 횟수도 줄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사업한다고 일정하지 않았던 귀가 시간은 회사에 취직하면서 바뀌었다.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는 아빠의 일정한 귀가 시간은 나를 숨 쉬게 만들었다.
밤에 엄마가 집에 있다고 내 불안이 사라지진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아빠와 한 집에 사는 것은 분명 내게 고통이었다.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연기자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방청객 입장인 나도 연기해야 했다.
아빠 같지 않은 아빠가 하는 연기는 전보다 다정하지 못했다.
가족이 있어도 천연덕스럽게 나를 불러 안마시키던 아빠는 중3인 내게 매번 그럴 수 없었다.
어렸을 때 만만하게 주물러도 되는 딸이 아니었다.
15살 딸은 강간이 무엇인지 간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 좁은 안방에서 잠만 자고 아빠를 피하는 딸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 밤 이후 아빠와 나는 다른 가족이 알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분명 둘만 아는 공기가 다른 느낌.
아빠 눈을 보지 않는 나와 그런 나를 알고 있는 아빠.
둘의 어색함은 내가 자리를 피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그닷없이 아빠의 불호령이 시작됐다.
"너! 아빠를 보는 눈이 왜 그래!"
무슨 상황이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아빠를 보는 딸 눈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사춘기 딸 눈이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정체성 혼란에 아비 정체성까지 혼란스러운 딸 눈빛은 얼마나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반항하고 싶은 동공이었을까.
아빠 의도는 반항하고 싶은 딸을 눌러줘야 한다는 행동일지 모른다.
"아빠를 보는 눈깔이 왜 그러냐고! 버르장머리 없는 년."
거울이 없으니 내 눈깔이 어떤지 알지 못한 채 아빠 욕을 들어야 했다.
늘 익숙한 상황이다.
아빠가 들개로 변하면 숨 죽이고 무릎 꿇고 가만있어야 한다고.
큰 오빠도 작은 오빠도 엄마도 모두 그래야 한다고.
누구도 반항한 적 없고 반항할 수 없는 거라고.
들개가 스스로 지랄을 끝내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 숙인 내 머리는 그의 손에 잡혀 흔들거린다.
주먹으로 머리를 맞고 발로 어깨를 때리면 나는 쓰러진다.
쌍스러운 욕을 거침없이 뱉는 아빠는 주먹과 발로 때리다가 재단 가위를 던졌다.
엄마가 바느질할 때 쓰는 재단 가위는 손잡이가 무겁고 크다.
재단 가위 손잡이가 내 코에 맞고 떨어진다.
날카로운 날로 맞았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눈이라도 찔렸다면.
눈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얼굴에 던졌을까.
다행이다.
코피가 주르륵 흘러서야 들개는 분이 풀렸나 보다.
"꺼져!"
엄마는 자식이 맞을 때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나약한 엄마는 지겹다는 혼잣말을 하며 부엌에 있었을 거다.
코가 붓기 시작하자 엄마가 말한다.
"내일 병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