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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빠는 변태 같았다.

by 정희승

국민학교 저학년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로 기억한다.


횟수를 세었던 것 같은데 요일이 정해진 건 아닌 것 같고 대략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내지 두 번이었다.



아랫목에 가로로 누워 자는 아빠와 아랫목에 발을 뻗고 세로로 자는 엄마와 나의 잠자리는 기역 자 모양이다.


발바닥이 툭툭 건드려져 잠을 깬 시간이 몇 시인지 모른다.


캄캄한 밤 마당 창문으로 비치는 전봇대 등불에 비친 아빠 자리에 엄마가 누워있다.


헉헉 소리 내던 더러운 아빠 신음 소리가 짐승 같았고 그 입을 틀어막으려는 엄마의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애 깨면 어쩌려고. 좀 조용히 하라고."



무슨 짓인지 몰라도 아빠는 흥분했고 엄마는 조용하라는 말만 했다.


헉헉대는 아빠 소리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평균 횟수까지 알게 된 것은 아빠 발이 내 발을 쳤기 때문이다.


위아래로 흔들거리던 아빠 그림자를 실눈으로 보았다.


어린애가 알면 안 되는 무섭고 더러운 짓 같아서, 내가 깰까 봐 조용히 하라는 엄마 말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모른척하며 자야 했다.



아빠는 딸이 깨어 부모의 그 짓을 알아주길 바랐을까.


할 때마다 내 발을 건드리는 아빠는 무슨 의도가 있었을까.


닿는 발이 소름 끼쳐서 "끄응" 소리를 내며 다리를 오므리며 자세를 바꾸기도 했다.


부모의 은밀한 시간에 끄응 소리를 내기까지 나는 용기가 필요했다.


모른 척해야 했기에, 내가 알면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서 아빠 발이 닿지 않게 다리를 오므리는 것도 내겐 힘든 일이었다.



고작 여덟 살이나 아홉 살 정도였던 나는 아빠 밑에 있는 엄마까지 더럽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빨리 그 시간이 끝나고 부뚜막에 내려가 뒷물하는 엄마가 내 곁에 오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야 자는 척하는 남모를 숨죽임이 끝나고 평온한 잠에 들 수 있으니까.


엄마와 할 때마다 내 발을 건드리는 아빠 발도 소름이지만 하지 않는 밤에 손으로 내 다리를 더듬는 아빠는 더 끔찍하다.



아빠 손과 발 모두 만져본 적 없는 뱀처럼 느껴졌다.


미끄덩거리며 축축하고 눅눅하고 날름거리는 뱀의 몸통과 혀가 되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가족은 내게 든든한 보호막이었다.


아빠가 나를 불러도 안마를 시켜도 가족 누구라도 있으면 아빠가 뱀으로 변하지 못했다.


거역할 수 없는 아빠가 아무리 안마를 오래 시켜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옆에 있어도 어두운 밤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손은 달랐다.


그 소름 끼치는 살살거림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이불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린아이에게 두려움과 공포는 그런 것이었다.


곁에 있는 엄마를 깨우지 못하고 참아야 하는 마음은 본능이었다.


엄마 모르게 가족 모르게 나쁜 짓하는 아빠를 알리면 더 나쁜 짓으로 나를 누를 것 같다는 무의식이 나를 숨게 만들었다.


자고 있는 엄마 다리 위로 몸을 돌리면 사라지는 뱀은 그 짧은 찰나의 스릴을 즐기는 것 같았다.



햇살이 들어오는 아침에 잠에서 깬 아빠 얼굴을 보았다.


아무렇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 얼굴을 보면 밤 사이 나 혼자 꿈을 꾼 것 같았다.


아니면 아빠가 가족 모르게 몽유병이 있던가 내가 몽유병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곤 했다.



지우고 싶어 외면하려 애쓰던 기억을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소환했다.


병원 가는 길에 가슴 성형 고백하다 말고 느닷없이 나를 그때 그 지옥 같은 밤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네 아빠는 그걸 너무 좋아해서 변태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다.

어떨 땐 버겁고 힘들었고 밤이 무서울 때도 많았다."



도대체 엄마는 왜 자꾸 말하는 걸까.


듣기 싫다고 해야 더러운 이야기를 그만두는 것일까.



"엄마 요즘 큰 이모는 어떻게 지내?"



특별히 궁금하지도 않은 큰 이모를 소환한다.


점점 귀가 안 들리는지 전화해도 대화가 안 된다는 말로 이어진다.



변태 같다는 아빠.


엄마도 남편의 성욕을 알고 있었다.



오십이 가까운 딸에게 이젠 털어내도 괜찮다고 생각했나 보다.


무서움이 많아 혼자 못 자는 엄마는 방이 세 개나 있어도 지금까지 아빠와 함께 잔다.


변태 같고 버겁다는 남편보다 혼자 자는 밤이 더 싫었던 것일까.



두들겨 맞았던 기억은 오래 남아 두고두고 우려먹는 곰탕처럼 아빠를 원망하고 욕하지만 대장암 검사로 1박 2일 입원했던 아빠를 모시고 집에 왔을 때 엄마 눈은 달랐다.


아빠가 좋아하는 굴비를 올리고 아빠가 좋아하는 배추 전을 부치고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여 내오는 엄마 눈은 다정했다.


그래도 혼자보다 둘이 낫다며 굴비 살을 발라주는 엄마 눈빛은 사랑이었다.


사기당한 결혼처럼 꽃다운 청춘을 도둑맞은 평생 원수로 흉을 해도 엄마는 아빠가 필요해 보였다.


그때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미운 정 고운 정 버무려진 노년을 의지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딸을 버리고 남편을 선택하는 사랑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엄마가 예상할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남편의 실체를 알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변태보다 더 심한 괴물과 지금까지 한 방에서 잘 수 있다고 나는 예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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