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이야기

by 정희승

1945년, 엄마는 목포의 어느 가난한 집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얼굴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 그런 딸로.

하지만 조상의 말이든 아니든, 그 셋째 딸은 언니들에 비해 유독 예뻤다.

가난이 만든 그늘 속에서도 맑게 빛나는 얼굴이었다.



여리고 예쁜 그 얼굴로 평범한 연애라도 했더라면 좋았으련만.


겁 많은 목포 여자는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와 생전 처음 만난 남자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말았다.


하필 그가 열네 살이나 많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내였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남자를 만나기 전 인생도 순탄하지 못했다.



네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으니, 아버지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하루 종일 바느질로 품을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어머니의 구부정한 등만을 바라보며 자랐다.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돌아누울 자리도 없이 형제들과 어떻게 지냈을까 싶다.


엄마의 유년 시절을 묻는 나에게 엄마는 늘 말을 아꼈다.


겁이 많고 낯을 가려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심심하게 보냈다는 이야기뿐.


큰언니는 남의 집 농사일을 돕다가 일찍 시집갔고, 작은언니는 남의 집 식모로 보내져 오랫동안 할머니는 딸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딸이라 언니들처럼 고생은 안 했지. 그런데 남편 하나 잘못 만난 게 평생 고생이야."


엄마의 말이다. 그건 외할머니도, 이모들도, 삼촌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이야기였다.


남편 하나 잘못 만나면 한 집안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핏줄로 엮인 모든 집안이 함께 흔들린다는 걸, 나는 어릴 때부터 숨 쉬듯 자연스럽게 알았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외갓집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명절 때마다 이방인처럼 구석에 앉아 있던 아버지를 보며, 엄마도 나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난 돌이 정 맞듯, 가시 돋친 관계는 누구에게나 아팠다.




엄마는 목포에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서울로 올라왔다.


작은 이모 신혼집에 얹혀살며 스무 살을 맞았다. 직장 경험도 없는 순진한 나이에, 하필 이모부의 손님으로 온 그 남자를 만난 것이다.


아버지는 어리고 예쁘고 순진한 엄마를 단박에 알아봤을 것이다.


아버지는 첫눈에 반했다고 말했지만 엄마 마음은 달랐다.


당시 돈 많고 능력 있는 나이 든 남자의 청혼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길이었다.


얼굴도 모르고 중매로 결혼하던 시절, 형부의 거래처 사장이라니 믿을 만했다.


직원이 백 명이 넘는다는, 성공한 사업가라는, 대학 나온 공무원 출신이라는 그럴듯한 수식어들이 엄마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가난을 벗어나 신데렐라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유리구두를 신고 화려한 옷을 입을 수 있을 거라고 꿈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혼전 임신으로 서둘러 올린 결혼식. 달콤한 신혼은 애초에 없었다.


사업으로 바쁜 남편을 기다리며, 출산 당일도 홀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차가운 병실에서 혼자 견뎌낸 스물한 살.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다는 것도 낯설었을 텐데, 아무도 곁에 없었다.


사업으로 바쁘다는 남편은 집안일에 관심이 없었고, 태어난 아기에게도 무심했다.


밤에 우는 아기를 시끄럽다며 집어던지는 남편을 보며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기를 품에 안고, 그렇게 쪽잠을 자야 했다.


그래도 엄마는 남편을 믿으려 했다.


사업으로 바빠서, 가부장적이어서, 성격이 모나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사업이 부도나고 이성을 잃은 남편의 모습은 엄마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빌려줄 돈이 없다는 장모 앞에서 아내를 폭행하고, 말리는 외삼촌까지 때리는 아버지.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엄마 앞에서 맞고 있는 딸, 딸이 맞는 모습을 봐야 하는 엄마의 심정.


그것은 아버지가 만든 전쟁이었고, 모녀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세월이 흘렀다고 잊힐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과거라고, 옛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하게 들락거리는 아버지를 외갓집 식구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는 법이니까.





keyword
화, 목 연재
이전 20화엄마 전화는 여전히 날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