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나올 때마다 벌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보며 엄마는 말없이 차가운 초코우유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작은 손으로 받아 든 차가운 팩이 뜨거운 볼을 식혀주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위로였다.
"엄마도 마셔."
빨대를 꽂아 엄마 입술에 갖다 대면 엄마는 마지못해 슬쩍 빨대를 빠는 척하고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작은 거짓말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가끔 식탁에 오르는 갈치구이 앞에서도 엄마의 사랑은 여전했다.
가장 기름진 뱃살 부분을 정성스럽게 골라내어 내 밥그릇에 올려주고, 자신은 까만 내장과 잔가시투성이 머리 부분만 골라 먹던 엄마.
그 손길에는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헌신이 묻어있었다.
살점 하나 없는 가시만 우물거리면서도 만족스러워하던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다.
사랑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라고.
그 따뜻한 손길과 무언의 배려 속에서 나는 세상이 안전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음흉한 시선과 어둠 속에서 뻗어오는 음침한 손길이 나의 작은 세계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아빠의 차가운 손길 사이에서 나는 사랑보다 두려움을 먼저 알게 되었다.
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는 너무 이른 나이에 철들어야 했다.
밤마다 찾아오는 공포 속에서도 나를 지켜준 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초코우유와 갈치 뱃살로 시작된 그 사랑이 어둠 속에서 유일한 빛이 되어주었다.
두려움과 공포를 사랑으로 이겨내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엄마였다.
그런데 마침내 용기를 내어 그 끔찍한 비밀을 고백했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어떻게 참고 살았니? 그런 네가 소름 끼치고 무섭다."
그 순간, 나는 두 번 죽었다.
한 번은 아버지의 손길로, 또 한 번은 엄마의 말로.
나를 지켜주리라 믿었던 엄마는 나를 위해 초코우유를 건네는 엄마가 아니었다.
초코우유를 건네주던 그 따뜻한 손길도, 갈치 뱃살을 골라주던 그 정성스러운 마음도, 이 한 마디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배웠지만, 동시에 배신도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가장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지도.
부모는 이럴 수 없는 건데.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되는 건데.
그 절망감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기억한다.
그 모순 속에서 나는 사랑의 복잡함을 깨달았다.
완전하지 않은 사랑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