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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신입 Aug 31. 2023

부조리의 테마파크, 회식

회식의 문제는 형태가 아닌 시간이다

<젊어지는 기업들…"회식 안 하나요?" 이런 말 20대가 먼저한다>


위는 올해 상반기에 주요 일간지에 나왔던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당시 담배회사의 2년차 신입으로 영업관리 직무로 일하던 나는 해당 기사에서 나오는 해괴한 명칭의 '젠Z'라는 포지션에 속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보도 자료나 회사 홍보팀의 부탁을 받고 쓴 기사일 것이 분명하지만 당시 나는 그럼에도 실제와 현실의 괴리가 너무나 극명하다고 느꼈기에 나중에 꼭 이를 소재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기사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사람들의 편견과 다르게 젊은 사람들 역시 건배사나 폭탄주 등이 없는 회식은 언제나 환영이며, 나아가 회식을 비롯한 문화 개선을 위해 실제로 현대백화점 및 SK그룹의 여러 계열사의 기업문화팀 산하 캠페인을 다루며 각 사가 어떻게 소위 MZ 세대의 신입사원들에게 문화적으로 맞추어주려고 하는지 나열하는 내용이다. 이를 읽고 나서 든 의문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 건배사나 폭탄주 등의 부조리가 없다면 모두가 회식을 환영할 것이라는 주장은 젊은 직원들이 회식을 피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아직도 건배사를 하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7번이나 신입으로 회사를 옮기며 느낀 점은 건배사나 폭음 강요 등의 문화는 대기업 기준으로는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회식을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는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 무엇보다도 '시간'이다. 주 40시간의 소정근로시간만 깔끔하게 근무해도, 저번 글에서 말했듯 점심시간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실제로 하루에 1시간씩을 더 회사에 매여 있게 된다. 이런 와중에 회식까지 한다면 1차만 해도 8시가 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종종 나는 2차는 빠질 테니 젊은 사람들끼리 '펍' 같은 곳에 가서 맥주 한 잔 하라고 인심쓰며 법인카드를 넘겨주는 부장님들 덕분에 귀가 시간은 9시, 10시 이후까지 늦어질 수 있다. 이런 기사를 보면 미디어는 본인들이 항상 기사에서 다루듯 요즘 세대들은 '갓생'을 살기 위해서 자기계발에 매진하고, 바디프로필을 찍고, 오마카세를 먹는다고 묘사를 하면서 정작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개인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 싶다.


결국 회식의 형태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뺏기는 것이 싫은 것이고 이것이 바로 젊은 사원들이 회식을 싫어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위 기사는 이러한 점에서 핵심을 제대로 빗겨 나갔다.


둘째, 항상 그렇지만 언론에 노출되는 기업의 각종 복리후생과 캠페인은 소위 '보여주기'식으로 언론을 통해 노출될 뿐 실제적으로는 잘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기자 입장에서 출입처 홍보팀이 부탁한 기사를 썼을 뿐 개인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쓴 글이 아닐 수 있지만, 언론인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글을 쓰는 만큼 그 실체적 진상을 파악하고 글을 쓰는 것이 기자정신에 부합할 것인데 저런 기사들을 보면 솔직히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저널리즘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 죽어 없어지고 지금의 언론은 기업의 하청 PR업체 밖에는 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겠다. 2019년에 내가 L석유화학회사 재무팀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회사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출퇴근 거리가 짧지 않았던 나는 이른 시간에 나와서 러시아워를 피할 목적으로 팀장님과 협의해서 선택적 근로시간제로 근무 형태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고, 팀장님께서는 쾌히 승낙하셨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HR에서 가서 선택적 근로시간제로 바꾸겠다고 말을 하니, 담당자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OO씨,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할 수는 있고 쓰는 사람도 있지만 조금 기다리라고 말해주고 싶어. OO씨는 신입사원이잖아. 보는 눈이 많다고? 걱정되어서 말해주는 거야."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나를 관리하는 직속 부서장이 허가해줬고, 회사 규정집에도 부서 사정에 맞추어 부서장 허가를 득하면 된다고 나와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강하게 이야기했고 결국 일단은 선택적 근로시간제로 근무하게 되었다. 허나 얼마 후 담당자가 나한테 왜 저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 팀 선배들은 의외로 별 말이 없었지만, 거대한 조직에 우리 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층을 쓰는 다른 팀 선배들로부터 '신입이 당돌하다', '아직 선배들 중에도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못 쓰는 사람도 있는데 경우가 없다' 등 별의 별 뒷 말이 다 들려왔고 심지어는 내가 근무 종료 버튼을 짐을 싸고 누르는지 짐을 안 싸고 누르는지 직접 와서 감시하며 꼰대질을 하는 옆 자리 영업팀의 선배도 있었다.


위 기사에서 나열된 각 회사의 제도들이 얼마나 잘 시행되고 있는지 나는 직접 근무해보지 않은 기업이기에 알 수는 없지만, 언급한 내 경험처럼 대기업일지언정 대부분의 회사에서 제도의 행정적 존재 여부와 그것의 실제적 작동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위 사례는 회식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본질적으로 회식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상술한 기사에서 회식을 비롯한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한 하이닉스의 주니어보드나 현대백화점의 컬처랩 등의 사례를 소개한 것은 정보 제공의 측면에서는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의 제대로 된 작동 여부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직원들에게 물었을 때 솔직한 대답을 들어본다면 답변이 분명히 현실과 괴리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똑같은 관점에서 회식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회식은 얄궂게도 태생부터 부조리의 테마파크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건배사나 '주도(酒道)' 개념이 남아 있는 조직도 적지 않을뿐더러 서로 '님'으로 존칭하는 문화를 쓰든, 영화를 보고 방탈출을 하든 '문화 회식'을 하든 결국 상/하급자가 서로 어울려야 하는 것이 회식이다. 이렇게 나뉜 권력 구조에서 하급자들은 철저한 리스너로서 역할하게 되는데, 사람은 원래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생물이다. 자기가 화제를 고르기도 어렵고, 부장님이 모르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제는 말할 수도 없다. 심지어 부장급 이상의 상급자가 억지로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이러한 것들을 더 얘기해 보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는 대화가 아닌 '설명'을 해야되는 지경이 된다. 그런데 회식 시간은 근무 시간이 아니라며 급여도 나오지 않는다. 재미가 있어 봤자 얼마나 재미가 있겠는가?


솔직한 내 의견을 밝히자면, 나는 회식은 물론이고 사무실 내의 부조리를 포함한 기업문화가 전격적으로 수평적으로 바뀌고 철저하게 직무 및 기능적 관점으로만 돌아가는 조직이 탄생하는 일은 앞으로도 나올 리가 없다고 믿는다. 그러니 되지도 않을 이상적 조직을 만들겠다며 부장님이 방탈출을 하고 2000년대생 신입사원이 골프를 치는 헛수고를 할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서로 얼굴 붉히고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여러 세대가 일하며 발생하는 당연한 과정이라 여기고 업무 시간에 집중하고 회식을 비롯한 서비스 야근을 없애 퇴근 후 삶에 대해서 보장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우월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장담컨대 완전 자율 회식은 모든 구성원 마음 속에 들어가 확인해보지 않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니, 법인카드까지 주며 거나하게 하는 회식은 이제 그만 없애고 정 직장 동료와 밥을 먹고 싶거든 철저하게 스스로들 알아서 어울리는 것으로 한정해주기를 기업 내 C레벨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들에게 진심으로 간청한다. 이상 모두가 알기에 너무나 진부하지만, 그 만큼 명확히 공인된 것이기도 한 대한민국 기업문화의 단점인 회식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회식에 대해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문장인 <미스 함무라비>의 저자 문유석 판사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저녁 회식하지 마라.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 있다. 친구도 있다.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 - 문유석,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첨언으로, 위 인용문과 처음 언급한 기사는 역설적이게도 같은 언론사에 기고되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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