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로 만든 몸과 같이
운동을 통해 몸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족속이 있다. 바로 '로이더'라고 불리는 금지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통해서 몸을 키운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보통 그냥 '스테로이드'라는 말로 통칭되는 이 약물의 효과는 굉장하다. 일설에 따르면 보통 사람이 운동을 통해 근육을 손상시키고 이를 회복하고, 다시 손상시키고 또 이를 회복하며 근육을 키우는데 필요한 한 주기가 48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약물을 쓰면 그 절반인 24시간 정도면 같은 효과를 볼 수가 있다. 남다른 효율로 몸을 키울 수가 있는 것이다. 운동으로 몸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마법의 약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흘리는 땀을 통해서 몸을 정직하게 키워 나가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이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반칙과도 같은 방법으로 남들이 쉽게 얻지 못하는 것을 얻어내는 정직하지 못한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자신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인간은 그 어떤 행동을 할 수도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것이지만, 본인이 만족한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지만 문제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본인도 만족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겉으로는 보디빌더들의 몸과도 견줄 수 있는 탄탄한 몸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몸 안의 내장기관들은 그 기능이 저하되고 일부는 상실되는 등 건강한 몸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심장, 호르몬, 피부, 여성 질환 등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심지어 남자임에도 여성형 유방이 생기는 등 여성 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바른 길이 아니라 빠른 길을 택한 대가는 더디지만 반드시 다가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를 한 사람으로 비유해보자면 위에 언급한 로이더와 다를 게 없다. 나는 미디어, 심지어는 내 주변의 평범한 시민들에게서 로이더의 일면을 본다. 미디어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과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을 방송하며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고 얘기하며, 심지어 한국인도 아닌 한국계 미국인인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수상한 것을 한민족의 저력이라며 대서특필한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고, 허준이 교수가 수상한 필즈상이 얼마나 대단한 상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나 이 상들은 두 개인이 얼마나 노력해왔고 위대한 사람들인지 말해줄 수는 있지만 그들이 소속된 국가가 얼마나 대단한지와는 아무 짝에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느낌으로 내가 어릴 때 배웠던 교과서에서는 OECD는 선진국 클럽이고,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것은 선진국으로 공인받았다는 증거라며 자랑스럽게 서술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대한 엄청난 열망과 심각할 정도의 컴플렉스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로이더가 자신의 왜소한 몸을 못 견뎌 약물에 손을 대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 교과서에 나오는 그 유명한 '기업의 이중구조'를 포함하여 고속성장만을 목표로 산업화 시대에 많은 것들을 희생해서 오직 경제적 성장만을 추구해왔고, 이는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처럼 우리사회에 너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로이더처럼 경제적인 측면으로는 선진국과도 같은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의 내부는 비슷한 경제 규모의 선진국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고 열악하다.
국가가 그렇다면 기업도 당연히 그것을 따라간다. 우리 기업들도 겉으로는 초우량 글로벌 기업들과 견주어도 꿀릴 것이 없어보이지만 그 속의 기업문화는 시가총액이나 영업이익 등의 경제적 규모와 비교해 초라하기 그지없어 그 안의 근로자는 과로와 후진적 처우로 죽어가는 것이다. 결국 사회 내 대부분의 사람이 직장인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이는 모든 사회 문제의 시발점이고, 국가와 기업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대가로 생긴 가장 심각한 악성종양이다.
따라서 반드시 해결이 필요한 문제이지만, 이전 글에서 말하였듯 나는 이러한 것을 재계와 정부에서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결국 해결을 위해서는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 근로자들이 나서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 개개인은 기업과 국가와 소위 '맞짱'을 뜰 힘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뭉쳐서 마치 초식동물들이 모여 덩치가 커보이도록 함으로써 육식동물로부터 본인들을 보호하듯이 하나의 집단으로 우리의 의견을 관철시켜야 한다.
이 집단으로서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사실 노동조합 얘기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 지금도 조금은 언급하기가 꺼려지는데, 나는 부끄럽게도 정치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음에도 지난 6년 간 7번의 신입사원 생활을 거치면서 내 몸으로 부대끼며 그 필요성을 느꼈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있었던 7개의 회사 중 노조가 있었던 회사는 4개였다. 그 중 '어용노조' 소리를 듣는 노조도 있었고, 꽤 강경하다는 평가를 받는 노조도 있었다. 양자 모두 없는 것보다는 나았고 협상 결과물에 노조원이 만족을 못할 수는 있지만 회사로부터 콩고물이라도 하나 더 받아와서 본인들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는 최소한의 행동은 하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나머지 3개의 회사에서는 이런 것을 접할 기회조차도 없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가끔 '귀족 노조'라는 강렬한 단어로 노조에 대해서 색안경을 끼게 만드는 기사들이 자주 보인다. 물론 음서제도 아니고 본인의 자리를 세습하는 과도한 요구를 하는 노조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원래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이익집단'이다. 당연히 많은 것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포지션의 집단이고, 그래야만 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그 회사의 내부로 들어가보지 않으면 저 노조가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지, 무리하지 않은지 우리는 외부자로서 알 수 없다. 더불어 검사가 구형을 향후 판사가 양형 조정을 할 것을 감안하여 본인이 생각하는 형량보다 크게 구하듯, 노조도 몇 개 조항은 수용되지 못할 것을 고려하여 협상을 하기에 요구사항만 보고 노조를 욕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조직률은 14.2%이고 단체협약적용률은 15.6%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가 매번 준거로 삼는 OECD의 평균인 25.1%(노동조합조직률), 48.9%(단체협약적용률)에 비하면 절반 정도를 넘나드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양태를 보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의 기업문화가 건전하지 못한 것은 슬프지만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미래가 없는 것을 알면 버틸 수 있겠는가? 노동조합이 없으면 우리에게는 기업과의 협상 창구 자체가 없으니 나아질 미래를 논할 방법 자체가 없다. 그러면 기업문화가 현재만 건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똑같을 것이니, 지금도 심각한데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조차 없다는 점에서 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핵심적 문제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공한 경영학과에 들어가면 처음 배우는 것은 생산의 3요소(토지, 자본, 노동)이다. 이 중 사용자는 자본을 담당하고, 노동자는 노동을 담당한다. 이 둘은 대립적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상호보완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적으로도 그렇지만 논리적으로도 노동조합은 기업이 경영활동을 하면 반드시 상응하여 존재해야만 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노조 경영' 같은 말이 당당하게 사회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다. 애초에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가 없는 형용모순인데도 말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도 어색해하지 않는, 우리 기업문화의 슬픈 단면이다.
앞선 내용에서 내가 말했던 대한민국 기업문화의 단점을 모두 아우르는, 마지막 단점이 바로 부정적인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모든 단점을 극복하고 건강한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결국 이 마지막 단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가 몸 담았던 회사의 노조를 보며 이익 집단으로서 부정적인 측면이 종종 나타날 수 있음을 잘 보았고, 심지어는 경영진과 유착되어 인사권에 개입하고 부정축재가 수반되는 촌극도 마주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부디 모든 분께 우리가 회사와 얘기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라는 유일한 창구를 스스로 닫지는 말 것을 간청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