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잠결에 놀라 전화를 받았다.
아직 이른 새벽인데 친정 엄마 목소리는 한껏 격앙되어 있었다.
또 무슨 일이지?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잠깐만”하시더니 갑자기 전화를 바꾼다. 이 새벽에 누가?
“아 저 경찰인데요 어머니께서 층간소음으로 신고를 하셔서요 “
이제야 파악이 됐다. 경찰관님께 엄마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바로 이해했다며 잘 설명드리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엄마는 경찰이 다녀간 뒤 흥분이 가라앉았다.
휴~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몇 년 전부터 층간소음문제로 엄마는 몹시 예민해져 있었다. 윗집에서 밤새도록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함께 잠을 자며 지내보기도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 소음은 엄마에게만 들리는 소음이었다.
소음문제로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다.
그런데 소음문제가 이번엔 다른 문제로 불거졌다. 윗집에서 CCTV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증세는 곧바로 신체적인 증상으로 이어졌다. 수축기혈압이 200으로 치솟으면서 수시로 두통증상이 나타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처음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도록 했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엄마는 약을 먹으니 울렁거리고 어지럽다는 이유로 드시지 않았다. 본인은 멀쩡한데 정신건강의학과에 모시고 간 것이 몹시 불쾌하셨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망상증상은 계속되었고 친정엄마의 두통 역시 심해졌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자고 해도 윗집에서 그런 거지 내 문제가 아니라고 완강하게 거부하셨다. 하지만 두통 때문에 일상생활조차 어렵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신경과에서 MRI 검사를 받았고 엄마는 비로소 치매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친정엄마는 그 약을 지금까지 뇌영양제로 알고 계신다. 약을 드시기 시작하면서 망상증상이 나타나는 빈도와 두통증상도 감소했다. 그렇게 친정엄마는 치매진단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엄마의 노년이 이렇게 펼쳐질지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십여 년 전 남편을 간병하느라 몇 년간 힘드셨기에 이젠 좀 평안하게 사실 줄로만 알았다.
나는 친정엄마가 치매진단을 받기 전부터 어느정도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진단을 받고 나니 알 수 없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보고 들었던 치매환자의 사례들이 친정엄마에게 모두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휴대폰에 안전 안내 문자가 뜰 때마다 혹시 우리 엄만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엄마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친정엄마는 치매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요양원에 입소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망상증상을 제외한 모든 기능들은 같은 연배의 여느 어르신들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마트를 가거나 은행업무도 무리 없이 볼 수 있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치매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