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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물 Aug 06. 2024

엄마의 냉장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들기름. 된장. 달걀. 다진 마늘. 그리고 이미 유통기한이 훨씬 지나버린 차…

한눈에 봐도 뭐가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냉장고 안은 휑했다.

나는 엄마네 집에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냉장고부터 열어본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엄마는 식사를 불규칙하게 하기 시작했고 엄마의 밥상은 늘 부실했다. 심지어 엄마가 식재료를 사다 두는 창고엔 어김없이 인스턴트 쌀국수상자가 쌓여있었다.


엄마는 손도 빠르고 음식솜씨도 뛰어나신 분이었다. 우리집은 대가족인 데다 친척이나 손님들도 자주 왔기에 엄마는 늘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내시곤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 자신을 위해서는 차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소박하더라도 매 끼를 정성스럽게 드시길 바랐다.


냉장고에 친정엄마가 좋아할 만한 반찬을 넣어두면 엄마는 그렇게 많이 가져오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딸이 뭘 싸왔나 궁금해하셨다. 그런 호기심에 조금씩이라도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 늘 이것저것 준비해 넣어드렸다. 하지만  노년기의 미각변화와 치매의 영향인지 건강한 맛보다는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신다. 예전엔 조미료를 음식에 넣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던 분이었는데 말이다. 나도 처음엔 정성껏 국이며 반찬을 만들어 드렸지만 이젠 종종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을 가져다 드리기도 한다.

시래기지짐, 갈비탕, 청국장찌개…


천정엄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내가 입덧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하루는 낚싯배에 올라탄 것처럼 메슥거리던 속이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으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뭐 먹고 싶어?”

“음… 오징어찌개”

엄마는 겨우?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도 웃음이 났다. 뭔가 거창한 음식이 생각날줄 알았는데 오징어찌개라니…

하지만 매콤한 오징어찌개 한입이면 울렁거리는 속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엄마는 당장이라도 해줄 수 있다고 하고는 냉장고를 열더니 지금이라도 먹물을 쏘아댈 것만 같은 싱싱한 오징어 두 마리와 달큰한 월동무 그리고 애호박을 꺼냈다. 신기하게도 엄마의 냉장고에는 내 속마음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것 마냥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까짓 게 그렇게 먹고 싶었어? 이게 뭐가 어렵다고?”

엄마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엄마는 오징어를 손질해 가지런히 썰고는 어슷 썬 무와 두툼하게 썰은 애호박을 냄비에 툭툭 담았다. 그리고는 고추장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 같은 양념을 그저 무심히 넣기만 했는데도 엄마의 손엔 맛을 내는 비법가루가 묻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보글보글 끓는 동안 이미 맛있는 냄새가 올라온다.


따끈한 흰쌀밥에 잘 익은 오징어와 매콤한 양념이 밴 애호박을 한조각 올려 입에 넣었다.

”와! 나 어릴 때 엄마가 끓여주던 맛 그대로네 “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엄마가 또 호기롭게 말씀하신다.

“이까짓 거야 뭐 쉽지”

오징어찌개를 맛있게 먹고 난 뒤 나는 시원하게 게워냈지만 엄마를 마주할 때면 이제는 먹을 수 없는 그때 그 오징어찌개가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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