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도겸을 피해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신의 팔에 침을 놓는 연습을 하는 도겸을 본 생도들 역시 너무 놀라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 대벽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침이 잔뜩 꽂힌 도겸의 팔과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 괜찮니? 여기 안 아파?”
도겸은 대벽을 한번 흘깃 보더니 대꾸도 않고 다시 침을 놓기 시작했다. 생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련도감 시험 소식은 도성에도 퍼졌다. 공부하는데 필요한 보양식과 총명탕을 준비하느라 부모들도 분주했다. 인왕산 수련도감에 올라가는 길엔 짐을 짊어진 노비들로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자넨 어느 댁에서 왔는가?”
“난 대벽도련님 심부름 가는 길이네. 그런데 자네 손에 든 건 뭔가?”
“이게 말일세. 백복신, 원지, 석창포, 감초를 달여 지은 총명탕이라네. 여기에 인삼을 무려 다섯 근이나 넣었다네”
“에이! 이 사람 겨우 인삼 다섯 근 넣은 거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가? 우리 대벽도련님 보약엔 산삼이 두 뿌리나 들어갔다네”
“뭐? 사 산삼?”
산삼이란 말에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자 대벽의 몸종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수련도감 생도들은 종일 의서를 암기하고 필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찬랑이 비명을 질렀다.
“으악”
그는 잔뜩 웅크린 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비대한 몸집이 죽겠다며 구르니 생도들이 깜짝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주인의 비명에 한걸음에 달려온 찬랑의 몸종은 안절부절못하며 소리 질렀다.
“이보시오! 우리 도련님 좀 살려주십시요! 여기 모두 의원 공부하는 나리들 아니십니까? 제발 우리 도련님 좀 살려주시오! 이러다 우리 도련님 죽습니다요!!”
류성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때 생도들을 헤치고 언국과 도겸이 나섰다. 둘은 찬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마치 산통하는 여인처럼 극심한 통증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도겸이 식은땀을 흘리는 그의 이마에 손을 대보니 신열이 있었다. 통증을 견디다 못해 창백한 얼굴로 어쩔 줄을 모르는 그를 살피던 도겸과 언국의 시선이 동시에 찬랑의 발에 머물렀다. 도겸과 언국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쪽씩 맡아 그의 버선을 힘껏 벗기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대벽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버선은 왜 벗기는 거야?”
버선이 동시에 휙 벗겨지자 찬랑의 발가락 주변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모여선 생도들 사이에선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헉! 대체 어떻게 안거지?”
“그러게 말야”
그때 도겸이 품에서 침통을 꺼내 들었다. 그때 언국이 입을 열었다.
“피부가 붓고 발적이 심해서 침을 놓기가 쉽진 않을 거야. 할 수 있겠어?”
도겸은 언국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침을 들고 잠시 숨을 고르자 언국이 다시 말을 이었다.
“침놓을 용기 없으면 이리 내. 내가 할께”
도겸이 언국에게 쏘아붙였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대벽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저렇게 부어있는 환부에 침을 놓는 게 쉽지 않을 텐데...어휴 난 못해”
도겸은 숨을 한번 고르고는 주저함 없이 연곡 혈과 음곡 혈에 3푼 깊이로 침을 정확히 찔러놓았다. 그녀는 찬랑의 얼굴을 한번 살피고는 풍지, 절골, 담수혈에도 차례로 침을 놓았다. 생도들은 도겸의 거침없는 침술에 놀라 말문이 막혔다. 지켜보던 생도들도 긴장했는지 침을 꼴깍꼴깍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마지막으로 도겸이 태충혈에 놓은 침을 살짝 돌리다가 튕기고는 부드럽게 빼자 잔뜩 웅크렸던 찬랑의 조금씩 몸이 펴지면서 그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생도들 사이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우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벽이 강산에게 귓속말을 했다.
“도겸이 저 녀석 지 팔뚝에 침 꽂아댈 때부터 알아봤어. 어휴 지독한 놈”
얼마 후 찬랑이 이제야 살겠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휴! 이제 좀 살겠어!”
도겸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건 백호역절풍이야. 마치 호랑이가 물어뜯는 것처럼 아프다 해서 붙인 이름이지. 습담이나 탁혈이 경락에 흘러 들어가 생긴 병이고, 혈이 허해져서 열을 받아 통증이 심해졌어”
도겸은 찬랑의 몸종에게 말했다.
“넌 당장 내려가서 장류수에 목통과 천궁, 당귀를 넣고 달여서 네 주인에게 갖다 줘. 그리고 큰 천오 세 개, 전갈 스물한 개, 지렁이생것 다섯 돈, 검정콩생것 두 돈 반, 사향 한 자를 가루를 내. 그리고 찹쌀을 넣고 쑨 풀에 개어서 녹두만 하게 환을 만들어 갖다 주고 빈속에 일곱 알에서 열 알씩 따뜻한 술에 복용하고 땀을 내도록 해”
도겸이 약 처방을 거침없이 읊자 생도들은 다시 한 번 놀라고 몸종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 그런디요. 소인 머리가 나빠서 뭔 말인지...찬찬히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시면 좋겠는디요”
몸종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하자 곁에 있던 언국이 말했다.
“그렇게 속사포처럼 처방을 말하면 나라도 못 외웠을 걸?”
언국이 찬랑의 몸종에게 친절하게 약 처방을 써주었다.
그때 도겸이 찬랑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론 기방을 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모여선 생도들이 키득거렸다. 찬랑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뭐라고?”
도겸이 팔짱을 끼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마다 그렇게 기방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기름진 고기에 술을 퍼마셨다간 그 놈의 발가락이 남아나질 않을 테니 뭐 알아서 하든가!”
도겸이 거침없이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본 언국은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침을 든 그녀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는 도겸이 제대로 할 줄 아는 거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곱게 자란 양반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침을 놓을 때 빛나는 그녀의 눈빛과 앙다문 입술 그리고 야무지게 침을 쥔 손에 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