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런런

by 보물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달린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죽어도 달리길 싫어했던 내게도 한국인 특유의 런 DNA가 조금은 흐르지 않을까?


한 번은 강릉 여행 중에 마침 유명한 카페를 지나가게 되었다. 워낙 대기줄이 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마침 오픈시간이라 굿타이밍이라고 좋아하며 카페로 차를 돌렸다. 그런데 이미 카페 앞엔 대기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무참하게 오픈런 실패! 나는 왜 오픈런이 오픈시간에 정확하게 도착하는 거라 생각했지? 오픈런은 오픈시간보다 훨씬 전부터 기다려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른 아침부터 흐리고 안개가 끼어있었다.

해가 쨍쨍하게 나는 것보단 흐린 게 달릴 땐 더 좋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비가 오기 시작했다.

얇은 패딩조끼가 꾸준히 내리는 부슬비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뛰는 기분은 마치 대자연을 거슬러낸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왔다.

말로만 듣던 우중런이었다. 다 뛰고 난 후의 몰골은 딱 물에 빠진 생쥐꼴이지만 이틀 치 운동을 해낸 기분은 생각보다 근사했다.


이젠 청소년이 된 아들은 웬만해선 아프지 않아 한동안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그런데 덜컥 독감에 걸렸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더니 오후부턴 열이 오르고 토했다. 마침 집 근처 소아과가 문을 열었길래 전화해 보니 어플로 예약하는 게 빠르단다.

정말 오랜만에 소아과 예약어플을 켰다.

예약오픈이 열리자마자 대기인원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 초 만에 대기인원 40명이 찍혔다.

아들은 무려 41번째!

아들아! 에미의 어리바리한 손가락이 미안하다!

소아과도 달려야 진료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일단 잘 달리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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