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정확히 소개하자면 동네 한 바퀴 러너다.
러너라니 뭔가 있어 보이지만 갱년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숨 쉬듯 늘어가는 체지방에 놀라 달리기 시작한 중년의 아줌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다 보니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 난 그 흔한 와치도 없이 핸드폰을 쥐고 달렸는데 달리다 보니 이게 영 불편했다. 그래서 인터넷의 바다를 허우적대며 수많은 후기를 뒤져 찾아낸 아이템이 러닝벨트였다. 러닝벨트를 고르는 기준은 나름 확고했다.
우선
달릴 때 덜렁거려서 달리기를 방해하지 말 것
챔피언벨트처럼 너무 과하지 않을 것
합리적인 가격 수준일 것
세 가지 기준에 부합한 벨트를 구입해서 매보고 나서 나는 매우 흡족했다.
핸드폰을 넣고 허리에 매면 묵직한 착용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몇 천 개의 리뷰가 달린 추천 템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남편도 다있소에서 러닝벨트를 샀다며 자랑했다. 평소 남편의 쇼핑리스트에 회의적이었던 나는 시큰둥했다.
한눈에 봐도 허접해 보이는 게 과연 제 몫을 할까? 싶었다.
어느 날 아침 서둘러 나가야 해서 남편이 산 러닝벨트가 눈에 띄길래 차고 나갔다.
다있소 러닝벨트는 핸드폰을 넣으면 축축 쳐져서 달릴 때 불편할 거란 내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핸드폰을 넣은 게 맞아? 싶을 정도로 가벼웠고 벨트를 맨 허리에도 부담이 전혀 없었다.
유명 스포츠브랜드가 비싸도 기능이나 디자인면에서 더 낫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가볍게 부숴버렸다.
이천 원짜리 러닝벨트 압승
(남돈남산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태클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그럼 넌 무조건 다있소야?
그건 아니다.
나도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야무지게 챙긴 룰루 00이니 알0니 하는 유명 러닝브랜드템도 입어보고 싶다.
아니 달리다 보니 저절로 관심이 가더란 말이다.
햇빛엔 색깔이 변하는 러닝고글을 끼고 달리면 왠지 있어 보이고 카본화를 신고 달리면 마라토너가 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러닝화를 신고 뛰어보니 발목에 부담도 덜하고 더 가볍게 뛰어지는 게 있다.
옷도 그렇다. 기능성 옷들은 땀흡수도 잘 되고 들러붙지도 않아서 달릴 때 정말 편하다.
그렇게 몇 달 달리다 보니 나도 어느 순간 하나 둘 러닝템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러닝템보다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바디인 건 부인할 수 없다. 몸이 좋으면 그 흔한 러닝템이 없어도 빛이 난다. 달리다 보면 스쳐 지나가는 다른 러너의 탄탄한 근육으로 다져진 다리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없다.
나는 비록 동네 한 바퀴 러너지만 때로는 폼나게 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도 없고 그저 건강을 챙기는 게 목적인 아줌마러너는
오늘도 그냥 운동화 신발끈 조여매고 뛰어나간다.
그리고 내가 나한테 이야기한다.
“템빨이고 나발이고 일단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