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을 구하던 날

부모의 마음과 부모가 될 마음 사이에서

by 그릿 grit

엄마는 말을 잃었다.
아빠는 말을 줄였다.
외동딸이었다.
넘어질까 봐 손을 더 잡아주던 집에서
나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분간 보지 말자.”
그 말은 소리치지 않아도
충분히 컸다.


집 안의 공기가
갑자기 낯설어졌다.
나는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해받고 싶었다.

그 사람의 부모님은 달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분들이었고
말은 많지 않았지만
“애가 생겼으면 책임져야지”
그 한마디로 정리했다.
환영이라기보다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다.


도시의 집과
시골의 집 사이에는
생각보다 긴 거리가 있었다.
가치관의 온도도
조금 달랐다.

출처_핀더레스트

그는
우리 부모님을 찾아왔다.
말을 고르고 또 골랐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결국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미안해서였다.


그는 말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 말은
영화처럼 멋있지 않았고
떨림이 묻어 있었다.


아빠는 오래 침묵했고
엄마는 눈을 피했다.
허락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사랑은 둘의 일이었지만
결혼은
네 사람의 일이었다.

그날
나는 딸이었고
동시에 엄마가 될 사람이었고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부모의 마음은
끝내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 역시
그때 처음
부모가 되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은 사람보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더 오래 흔들렸다.

그날의 온도는
눈물보다
침묵이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