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빛과 고전의 지혜가 만나면
이 글은 박찬국 교수님의 책 『현대 철학의 거장들』과 채사장 작가님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 그리고 최진석 교수님의 책 『나 홀로 읽는 도덕경』과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읽고 쓰는 독후감상문이다.
근대에 들어 데카르트에서 뉴턴, 베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이성은 절대적인 지위를 얻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했을 때, 그는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하는 주체로서 ‘나’를 확립했다. 뉴턴은 자연현상마저 기계적 원리로 설명함으로써, 인간 이성이 자연법칙을 해독하는 강력한 도구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근대 이성은 막스 베버가 말한 ‘목적 합리성’으로 절정에 달했다. 즉, 먼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수단과 절차를 정교하게 마련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근대 산업사회와 국가 기구 역시 이 목적 합리성 속에서 빠르게 효율적인 틀을 확립했다.
그러나 베버는 동시에, 효율성만 극단적으로 추구할 경우 인간이 만든 제도라는 ‘쇠 우리’에 스스로 갇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감성이나 윤리, 자유의지가 배제된 채 기계적 목표만을 추종하면 인간다움을 잃어버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근대 이성이 부상한 배경에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며 중세의 신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인간 주체’에 주목하기 시작한 철학사적 흐름이 자리한다. 이성에 초점을 둔 흐름은 크게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뉘었는데, 데카르트를 필두로 한 합리론자들은 수학적 확실성과 연역적 방법을 통해 보편적인 진리를 탐구했다. 반면, 베이컨과 로크를 잇는 경험론자들은 관찰과 귀납적 사고로부터 지식을 축적하는 길을 강조했다. 데카르트처럼 보편 원리에서 개별 사실을 추론하는 연역법이 있는가 하면, 베이컨처럼 개별 경험을 토대로 보편 명제를 끌어내는 귀납법도 있었다.
특히 베이컨은 연역법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되풀이 확인하는 데 그치기 쉽다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얻는 데에는 귀납법이야말로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관찰과 검증이 가능한 특수한 사례들로부터 자료를 모으고, 거기서 공통점을 찾아 점진적으로 일반 법칙을 도출하는 방식을 중시했던 것이다.
서양 철학이 이성을 중심에 두고 그 역할과 한계를 끊임없이 실험해 온 과정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오래전에 들었던 공자와 순자 강의 내용이 떠올랐다. 공자를 다루던 강의에서는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 지혜롭다(敬鬼神而遠之)”라는 태도가 소개되었다. 순자를 다루던 강의에서는 “바위나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 그저 이상하다고 여기면 될 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라는 그의 가르침이 인상 깊었다. 또한 “기우제를 지내면 왜 비가 오는가?”라는 물음에, “안 지내도 비는 온다. 기우제는 비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뿐이다”라고 답했다고도 한다. 내가 『논어』나 『순자』 원전을 직접 읽은 지 오래되어서 강의 내용의 정확한 출처가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들었던 공자와 순자의 가르침 자체는 여전히 의미 깊게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미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나 주술적 요소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태도로 문제를 바라보려 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고대 동양에서도 사람과 사회에 대한 물음은 ‘철학적으로’, 자연현상에 대한 접근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과학적인’ 방식으로 전환할 실마리가 이 시기에 이미 엿보였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런 시도가 동양에서 철학과 통치학이 발달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최근에는 최진석 교수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노자에게서도 비슷한 통찰을 발견했다. 노자 역시 인격신에 대한 두려움과 복종 대신, 우주 만물을 움직이는 자연의 법칙(道)과 그 본성(德)에 따라 살아가는 삶과 통치 방식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노자, 공자, 순자 사이에 어떤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연결점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물론 세 사람의 관점은 분명히 다르다. 공자는 인간 내면의 본성으로 인(仁)을 강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규범으로 예(禮)를 중시했으며, 순자는 이 예(禮)가 지닌 사회적 기능에 더욱 무게를 두었다.
나는 2,000년도 훨씬 전에 살았던 동양 사상가들의 통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사실에 새삼 놀란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중심이 된 현대 사회일수록, 노자의 『도덕경』이나 공자의 『논어』, 순자의 『순자』 같은 고전이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에 대해 중요한 실마리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옛 기록이니만큼 오늘날의 관점으로 새로이 해석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저 과거 춘추전국 시대의 문제 해결 방식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들의 근본적 통찰을 우리 시대의 사회·국가적 문제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나 역시 고전을 읽을 때 늘 이러한 현대적 재해석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독자들께도 노자, 공자, 순자의 지혜가 담긴 이 고전들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분명 우리가 놓치고 있는 어떤 통찰을 되살려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