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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Nov 23. 2022

완벽한 붕어빵을 만나는 일에 대하여

가슴속 3000원, 다들 가지고 다니시죠?

17시 55분 퇴근 오 분 전. 서둘로 외출복으로 환복 한다.

18시 00분 퇴근. 집 밖으로 튀어나와 지도 어플을 켠다. 도착지는 '롯데백화점'. 지난주에 당첨된 로또 당첨금으로 샤넬 클래식 백을 사러 가는 길... 일 리가 없다. 내가 가려던 곳은, 나를 이토록 설레게 한 곳은 바로...!












각종 페이에 앱카드까지 활성화되어있는 요즘 현금은커녕 실물 카드도 안 들고 다니지만, 이 맘 때부터는 현금이 3000원쯤 필요하다. 바로 붕어빵 때문에. 완벽한 타이밍에 붕어빵을 만났는데 단 돈 천원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야 한다면...? (과장 많이 보태서)이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겨울 간식에 관심이 없는 나도 붕어빵만큼은 좋아하는데, 지난 몇 년간 먹은 횟수는 손에 꼽혔다. 근처에 붕어빵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가 못 찾는가 싶었는데, 붕어빵 정보를 찾기 위해 들어 간 당근 마켓에도 'ㅇㅇ에는 왜 붕어빵 파는 곳이 없을까요ㅠㅠ'라는 글 뿐이었다. 나는 붕세권의 주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붕어빵이란 무엇인가. 먹고 싶은 때 바로 먹어야 한다. 교통편을 이용해 다녀올 만큼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뛰쳐나가서 사 올 수 있는 거리에 붕어빵이 팔아야 진정한 붕세권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나에게 가슴속 3000원은 늘 무용지물이었는데, 몇 달 전 드디어 붕세권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붕어빵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그땐 딱히 당기지가 않아 위치 파악만 했다. '나도 드디어 붕세권이다!'라는 기쁨을 만끽하며.

그런데 왜인 걸. 다음에 같은 자리에 가 봤을 때, 붕어빵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또 다른 곳이 있었지만, 앙버터 붕어빵, 피자 붕어빵 등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는 조합의 붕어빵만 있었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치킨도 후라이드만 먹는 보수적인 입맛으로, 붕어빵도 팥이 들어 간 붕어빵만 쳐줬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지역 주민들의 정보력이다. 당근 마켓에 검색을 해보니 인근의 붕어빵 가게가 나왔다. 집에서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지만, 충분히 투자할만한 시간이었다. 이미 내 머릿속은 온통 붕어빵이 지배해, 더 먼 곳도 염두에 둔 상황이었다. 내가 찾으려는 붕어빵 가게는 뚜레쥬르 ㅇㅇ점에서 롯데백화점 후문을 향하는 길에 있었다.

골목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멀리서도 주황색 비닐이 보였다. 종종걸음으로 가보니 과연 붕어빵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사장님이 프로의 손놀림으로 붕어빵을 굽고 계셨고, 진열대 위엔 붕어빵 세 개가 나란히 서있었다.

"얼마예요?"

"두 개에 천 원이요. 근데 이건 슈크림이야."

"팥은 없나요?"

"팥은 지금 만들고 있어요."

"그럼 팥 2,000원어치 구매할게요!"

"그래요."

순식간의 쿨 거래가 끝났고, 이제부터가 기다림의 순간이었다. 내심 갓 구운 붕어빵이 먹고 싶었던 나는 진열대 위의 붕어빵이 슈크림이라는 데 오히려 안도했다. 오랜만에 붕어빵을 굽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웠다.


혼자 붕어빵과의 추억에 빠져있는데, 잠시 후 아저씨 두 분이 다가오셨다.

"붕어빵 네 개 주세요."

"아니, 무슨 붕어빵을 먹는다고 그래..."

단골인 듯 능숙하게 주문을 하는 아저씨와, 함께 온 일행 아저씨는 옥신각신했다. 두 개씩만 먹자고 했다가, 네 개씩 싸가자고 했다가, 슈크림만 사자고 했다가, 아무거나 섞자고 했다가.

"여기 위에 있는 거랑 합쳐서 네 개씩 두 봉지 주세요."

"먼저 온 아가씨가 있어서 기다리셔야 돼."

"아..! 그럼 먼저 오신 아가씨 먼저 드려야죠. 이거 먼저 가져가요."

그제야 포장마차 구석에 박혀 있던 나를 발견한 아저씨가 말했다.

"... 저는 팥만 주문해서요."

"에에~? 팥만? 여긴 슈크림이 맛있어요."

단골 아저씨가 말했고, 일행 아저씨는 우리 같은 늙은이야 슈크림을 처음 먹어보니까 맛있지 요즘 학생들은 팥을 더 좋아한다며 타박했다. '아 그런가?'라며 허허 웃은 단골 아저씨가 그러고 보니 우리 어렸을 땐 슈크림이 없었구나...로 시작하여 한동안 두 분의 '그땐 그랬지.'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전의 붕어빵은 밀가루만 가득하고 팥은 하나도 없었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맛있었네, 처음 슈크림 붕어빵을 먹어보고 너무 놀랐네... 요즘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엄청 작은 붕어빵도 있네 등등. 종종 나에게도 동의를 구해, 나 역시 '네네', '그렇죠. 맛있죠.'등등의 맞장구를 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계속 붕어빵을 굽고 계셨다. 반죽을 붓고, 팥을 얹고, 또 반죽을 부은 뒤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붕어빵의 세계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끊임없이 뒤집기를 반복하며 상태를 보고, 터질 거 같은 곳에는 반죽을 더 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한창 붕어빵이 구워지고 있는데, 이제 막 퇴근한 듯한 여성 분 한 분도 대기열에 섰다.

"아이고, 사장님 바쁘시겄네. 우리 꺼 천천히 줘도 되니까 천천히 하세요."

단골 아저씨는 말했고, 일행 아저씨는 또 투덜대셨다. 집 청소 안 하면 집에서 쫓겨난다고. 얼른 가서 집 청소해야 한다고. 그러게 왜 붕어빵을 먹자고 했냐고. 거기 서 있던 모두가 큭큭대며 웃었고, 그러던 중 드디어 나의 붕어빵이 나왔다.

"맛있게 먹어요."

사장님 뿐만 아니라 거기 계시던 아저씨들이 함께 인사를 했다. 나 역시 '맛있게 드세요.'라며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건 오랜만이었다. 성별도 연령도 다른 우리는 잠시 동안 '붕어빵'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함께였다. 천 원에 두 개짜리 붕어빵을 먹기 위해 쌀쌀한 길거리에서 기꺼이 차분히 기다리는 이들.  


돌아선 나는 신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서둘러 붕어빵 하나를 꺼내 들었다. 좀처럼 길거리에서 음식을 못 먹는 나였지만(코로나 이후 더욱),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뜨끈한 붕어빵을 꺼내 들어 꼬리부터 베어 물었다(부먹 찍먹만큼이나 갈리는 걸로 아는데, 나는 무조건 꼬리부터다.).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밀가루 반죽과, 적당히 물컹하면서도 식감이 살아있는 팥의 달콤함이 올라왔다. 짜증 났던 직장에서의 하루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부러운 시선이 느껴졌다(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으나, 정말 몇몇 시선은 끈질기게 붕어빵에 붙어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저기 롯데백화점 후문 쪽에서 팔고 있어요! 어서 가세요!'라고 소개해줄 기세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붕어빵 한 마리를 해치운 나는 집에 들어서 곧바로 붕어빵 하나를 더 먹기 시작했다. 역시 겉바속촉의 완벽한 붕어빵이었다. 말캉한 붕어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무조건 바삭한 붕어빵 파다. 꼬리부터 먹는 이유 또한 꼬리가 좀 더 바삭하기 때문이었다.

우물우물 달콤한 팥의 맛을 음미하며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두 마리... 아니, 한 마리쯤은 슈크림 맛도 사봐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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