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이 시작되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데서 오는 혼란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증세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와 집에 혼자 있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손이 자꾸 떨렸고 몸 어디 한 곳에도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아내는 메시지들을 읽기만 할 뿐 답이 없었다.
인터넷에 이혼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변호사에게 전화해 출구가 없는 질문들을 반복했다.
제가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노름을 했나요, 술 마시고 돌아다녔나요. 일 끝나면 집에 들어오고 생활비도 꼬박꼬박 줬어요. 싸움은커녕 말싸움이나 제대로 해본 줄 아시나요. 애 보는 것도 힘들대서 돌봄 선생님도 일주일에 네다섯 번씩 와요. 퇴근하고 애도 제가 씻긴다고요. 집안일이나 제대로 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요리도 못해요. 근데 자기가 뭐 잘했다고 이혼 소송을 하는 거예요? 이거 법원에서 받아주는 거 맞나요?
하나 다행이었다면 이런 일에 익숙한 변호사는 내가 쏟아내는 무의미한 질문들과 하소연들을 묵묵히 듣고 덤덤하게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알려줬다는 거.
변호사는 그동안의 결혼 생활동안 내가 배우자로서 해왔던 역할들과 아이와 함께 잘 지냈다는 증거를 모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씩씩거리며 그동안 찍었던 가족들과 사진들, 메시지들, 영수증들을 모아 보냈고 변호사는 서류가 정리되면 답을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동이 터오는 이른 아침이었고 해가 뜨며 하늘이 노을빛 마냥 빨갛게 번지고 있었는데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딸이 너무 보고 싶었고 아내에게 대체 왜 그런 거냐고 묻고 싶었다.
법원에 사건번호를 조회하면 아내가 사건을 맡긴 사무실의 이름이 뜬다.
소송에 관해 문외한이었던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법무사무실의 이름을 봤을 때 나는 또 한 번 절망했다. 왜,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내가 그렇게 미웠나.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회사 이름과는 상관없이 그동안 혼인생활을 어떻게 해왔느냐로 판결이 난다고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는 변호사의 말은 제대로 들어오지 못하고 귓가만 맴돌았다. 이내 화도 났다.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차마 집에 혼자 있지 못하고 어머니집으로 갔던 나는 집안 구석에 이불을 편채로 한참을 끙끙거렸다.
길게 잠들지도 못하는 그 사이사이마다 꿈을 꿨다.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는 꿈, 번개에 타들어가는 꿈, 범죄에 휘말리는 꿈 등, 다 기억나지도 않지만 잠들 때마다 무서운 꿈을 꿔대니 잠들 수가 없었다.
다시 동이 터오는 아침에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떤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하고 싶었다. 너무 이른 전화에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어쩌다 누가 전화라도 받으면 무슨 일이냐는 한마디에 울음부터 나왔다. 딸이 있던 채로 이혼을 했었던 지인과 통화할 때는 둘 다 전화기를 붙잡고 통곡을 해댔고 당시 상황을 내 입으로 뱉을 때마다 가시로 긁어대는 것 같았다.
어느덧 전화할 사람도 없어지고 한동안 끊었었던 담배를 지독히도 태워댄 탓에 목소리도 자갈처럼 갈리는 소리가 났다. 해는 떠서 밝아졌는데 갈 곳이 없었다. 마당에 나오신 어머니께서 이제 그만하고 밥 먹으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항상 그랬다. 사람이 때 되면 밥을 먹어야 한다고.
식탁에 앉은 나는 세 숟가락도 채 먹지 못하고 내려놨다. 먹으면 어쩔 건데. 힘을 내서 어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