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알아야 하잖아.
이혼이라는 사건을 마주했을 때 정신적으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내가 붙일 수 있었던 감정의 이름은 절망감에 가장 가까웠던 것 같다. 막연히 이혼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나는 이혼 반대주의자는 아니었다. 물론 그게 내가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보진 않았지만.
이혼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보다 내가 이때까지 맞다고 생각하고 행하고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절망감, 그 부정이 나와 가장 가까웠던 배우자에게서 왔다는 충격, 그 모든 게 나로부터 비롯됐다는 자기혐오.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정말 티끌 같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길지도 않은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몇십 년 살면서 고통스러운 일 한번 없었겠냐고. 이유라도 알면, 내가 감내해야 한다고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어떤 고통이라도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고 평생 그렇게 살아왔었다. 알고 싶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사실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딱히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마라'였는데 지금도 받아들이기 쉬운 말은 아니다. 비유를 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홍수가 나서 마을 하나가 박살 났는데 거기에 이유를 찾아낸다 한들 뭔가 달라지겠나, 그런 차원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아무리 다시 홍수를 대비해도 더 큰 비가 내리면 둑은 또 무너지겠지. 물을 끼고 사는 동안 그런 위험을 피할 순 없겠지. 그렇다고 다시 이전처럼 살아가고 싶진 않았다. 같은 이유로 두 번 아프고 싶지도 않았고 그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하고 싶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길지 않은 고민 끝에 심리상담소를 찾아갔다.
사건이 터지기 1년 전쯤 아내는 처가부모님들까지 데려와 이혼하자고 난리를 벌인적이 있었다.
내 짐은 집 밖으로 던져졌고 내가 무슨 항변이라도 하려고 하면 몇 사람이서 쏘아붙이니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3주 간의 별거 후 다시 같이 살게 됐지만 그땐 이미 마음속에 앙금이 생겨버려 이전처럼 서로 대화가 불가능했다. 무슨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내가 내가 생각했던 대화를 벗어나면 호흡이 가빠지고 귀가 빨개졌었다.
고민 후 나는 아내에게 부부상담을 권했고 그렇게 우리는 5회의 부부상담을 받았었다. 만약 누군가가 부부상담이 효과가 있는지 물어본다면 나는 단번에 그렇다 아니다로 대답하긴 힘들다. 내게 당시 5회의 상담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줬었고 그때 내가 마음속에 심었던 씨앗은 지금도 훌륭히 자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평생 가꿔가야 하겠지.
보통 10회를 권하긴 하는데 당시 재정적으로도 여유가 없었고 5회까지 갔을 때 내적으로 뭔가 더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5회만으로도 지금까지 후회가 없었던 건 그만큼 매 방문마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상담 선생님께서 내게 알려줬던 이야기들은 내가 평생 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시각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었다.
같은 이야기도 누군가에겐 잔소리로 들리고 때에 따라서는 삶의 구원이지 않을까. 부부상담이 정말 도움이 되느냐고.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이 말만은 확신할 수 있다. 당신이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하는 모든 건 당신 삶의 발판이 된다. 타인에게 묻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제 발로 상담소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지.
어떤 이유로 심리상담소를 찾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이 상황을 헤쳐나갈 의지가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 내가 눈앞의 상황을 가감 없이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는지, 나의 이야기를 내가 스스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지. 상담소는 그저 그 계기가 되어줄 뿐. 그리고 상담사는 정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나를 도와주리라고 내가 먼저 믿는 것.
이렇게 말로 하나씩 풀면 길지만 한편으로는 간단하다. 스스로 도저히 어찌 못할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실오라기라도 하나 잡아보겠다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면 가능하다. 지푸라기가 아니라 먼지 한 톨이라도 부여잡고 싶은 비참함이면 된다.
상담료가 핑곗거리가 될 정도면 아직 아니라고 본다. 난 당시 충격을 받아 개인 사업으로 들어가 있던 자금들을 회수하지 못한 채로 소송 진행까지 준비하는 바람에 다음 달 생활비도 없던 상황이었지만 정말 바닥까지 긁어모은 돈으로 상담 예약을 잡았었다. 그대로 어찌 살아간다 한들 그건 나한테 죽은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럼 상담소에 가면 그동안의 고민들이 짠하고 해결되냐. 당연히 아니죠. 그러면 무슨 소용이냐.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니까. 그게 뭐냐. 당신 자신, 앞으로도 긴 시간 동안 고통과 고민들을 마주하고 해결해 나갈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쯤에 서있는지, 한 걸음씩 걸어 나간다는 느낌이 뭔지 옆에서 알려주는 역할, 잃어버린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다시 찾는 시간.
심리상담은 해결이 아니다. 과정이다. 해결이라는 게 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앞으로 평생 동안 수많은 결정만이 있겠지. 비록 내 지난 결정들이 지금의 상황으로 나를 몬 탓에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됐지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 건 다시 한번 내가 올바르게 쌓아 올린 결정들이리라.
결국 상담소는 그 찰나 같은 과정에서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는 곳이다. 한동안 찾지 않은 지금까지도 나에겐 지표 같은 곳이다. 적어도 난 당시심리상담소를 찾아갔던 일이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건 내가 그 이후로 어느 정도 내 길을 찾아 바르게 걸어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혼으로 상처를 겪고 다시 회복한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재활을 시작했던 곳이 있었다. 명상센터를 다닌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일터에서 회복한 사람도 있었으며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면서 계기를 찾은 사람도 있다. 다시 한번 자신이 자신 스스로에게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괜찮지 않았을까.
나에겐 그중 하나가 심리상담소였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