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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Oct 14. 2023

지하철역

어느 역까지 가세요

차가 없던 시절 우리는 주말이면 전철을 타고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난 2호선을 좋아한다.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들은 대부분 갈 수 있다. 어딜 가더라도 2호선을 타고 근처까지 간 뒤 한 번만 갈아타면 대부분 갈 수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강을 건너 성수동을 지나가는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지상의 풍경이 종종 떠오른다.


우리가 내리려던 역의 이름이 방송으로 들려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신호를 주고 같이 문 앞에 선다. 내린다. 손을 잡고 사람들을 지나 우리가 가려는 곳을 함께 걸어간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자리가 생기면 서로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운이 좋거나 조금만 기다리면 나란히 같이 앉는다. 서로 기대어 집으로 간다.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늦은 밤 가로등 불빛도 조용해 우리 발걸음과 이야기를 나누는 말소리만 나직하다. 집으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아 자연스레 순서를 정한채 씻고 잘 준비를 한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이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모든 시간이던 시절이다.


소송이 길어지고 있던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전철에 나 혼자 앉아있다고.


우리는 서로의 집에서 나와 전철을 탔고 어느 역에서 서로를 만났다. 우리는 사랑했고 결혼했다. 그렇게 행복하게 기대어 가다가 문득 그 사람이 일어나 전철에서 내렸다. 나는 그 사람이 어느 역에서 내리는지 묻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의 전철에서 내릴 것인가. 되돌아가는 차를 탈 것인가. 내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내가 탄 전철은 끊임없이 나아가며 아내와 멀어진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내리지 못한다. 나는 내가 내리는 역이 어딘지 알고 있다. 지금 내려서 다시 쫓아간다 한들 끊임없이 내가 가야 하는 그곳을 그리겠지. 언젠가는 다시 그 전철을 타겠지.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 나를 계속 데려가거나 잠시 나를 쫓아오다 다시 그곳으로 가겠지.


그래. 만에 하나 잠시 샛길로 돌아 우리가 가는 곳이 같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혼자 전철에 앉아있다. 터덜거리는 바퀴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다음 역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온다.


대부분 서로 힐끔거릴 뿐이지만 이따금씩 옆에 앉은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건조한 대화가 오고 가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친해져 조금은 더 멀리 같이 가기도 한다.


이제는 어느 역에서 내리는지 물어본다. 웃으며 대화를 나누다가도 서로가 내리는 역을 힐끔거리며 헤어져야 할 시간을 확인한다. 만약 상대가 먼저 눈치채지 못하면 내가 먼저 헤어져야 할 시간임을 알려준다. 섣불리 따라간다는 상대를 조용히 타일러 가야 할 곳으로 보내준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만날 거라면 또 만나겠지요. 그때는 내가 그쪽을 찾아갈 수도 있겠죠.


사실 어느 역에 내리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그저 내리고 싶지 않기에 타고 있다. 이따금씩 어느 역에 멈춰 설 때면 한 번쯤 내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잠시 내려보기도 한다.


어느 순간엔가 다시 혼자 전철에 앉아있다. 정확히 어떤 역에 내리고 싶은지는 잘 모른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계속 돌고 있다.


그래서 2호선이 좋은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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