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부르면 가슴이 아립니다
어머니,
당신을 부르면 가슴이 아립니다
엊그제 토요일 새벽,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어 고향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우리 논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내가 뛰놀던 산자락과 보리밭도 이제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어머니는 여전히 홀로 계셨습니다. 자식들 폐 끼치기 싫다고, 아직은 혼자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요.
큰아들이 온다고 허리가 아프시단 것도 잊고, 며칠 전부터 무언가를 잔뜩 챙기셨다고 합니다. 쌀 두 가마니, 고구마 한 박스, 검은콩, 들기름, 고춧가루, 참깨, 바지락, 젓갈, 동치미 한 동이까지. 차 트렁크와 뒷자리를 가득 채운 그 보따리들은 단지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 그리고 당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신 걱정과 그리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장은 하지 마라. 내가 택배로 보내줄 테니.”
칠순을 넘긴 아들도, 당신께는 여전히 철없는 아이입니다. 그렇게 늘 저를 돌보시는 어머니 앞에서는, 나이 들어도 어리광 부리는 어린 자식일 뿐입니다.
당신은 늘 말없이 자식들을 위해 사셨습니다. 배고픈 자식에게는 젖을 물리면서, 당신의 허기는 생각지도 않으셨습니다. 육 남매의 학비를 대느라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셨던 당신. 밤나무 그늘 아래 앉아 한숨 돌리시며 땀을 닦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모든 희생 앞에서 저는 이렇다 할 보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어머니께 제대로 된 생일상 한번 차려드린 적 없고, 따뜻한 말 한마디도 마음 놓고 건네지 못한 철부지였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해마다 내 생일이면 전화하셨습니다.
"얘야, 미역국은 먹었느냐?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 나는 괜찮으니, 꼭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하거라."
그 짧은 한 마디에 가슴이 저려 옵니다. 그 말이 어머니의 전부였습니다. 당신은 늘 주기만 하셨습니다. 자식에게 단 한 푼의 대가도 바라지 않으셨고, 따뜻한 밥 한 끼, 김치 한 포기, 계절마다 바뀌는 장 담그는 손길 속에 당신을 다 담아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구순이 되셨을 무렵, 어느 늦은 밤에 고향에 들러 당신과 나란히 앉아 밤을 새워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무뚝뚝하고 붙임성 없는 큰아들이지만, 그날 밤은 말이 참 많아졌습니다. 나이 든 아들이 그리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어머니도 조용히 웃으셨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긴 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떠나신 지 2년이 되었습니다. 보따리 가득 싸주시던 손길도 더 이상 없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신은 제 안에 더 선명해졌습니다. 가을비 내리는 날이면, 당신이 김치 냄새가 문득 떠오르고, 당신이 말씀하시던 음성이 귓가에 맴돕니다.
오늘은 제 생일을 앞둔 날입니다. 생일상을 받은 기억은 없어도, 어머니의 전화 한 통이 그리운 날입니다. 그냥 묻고 싶습니다. 어머니, 거기서도 제게 미역국은 먹었냐고 물으시나요?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고,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느냐고요.
어머니, 당신을 부르면 가슴이 아립니다.
하지만 이 아픔은 곧 사랑이기도 합니다.
※ 사후의 만반진수는 불여 생전의 일배주.
오늘따라 이 문장이 유난히 아립니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