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내내 먹은 술이 얼굴에 돌고 있습니다. 민망한 낯색을 감추고자 거울을 보며 치장을 합니다. 볼에 파운데이션을 바르다가 순간적으로 멈칫했습니다. 몇 주 전에 뺐던 점이 다시 생겨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전에도 심심하면 볼에 있는 점을 빼곤 했다지요. 이 점은 어쩌면 사라졌다가 다시 생긴 것이 아닌 같은 자리에서 끈질기게 뻐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가진 점이 거슬립니다. 오늘 다시금 발견한 볼의 점은 특히 신경 쓰이는 흔적입니다. 얼굴에 있는 것은 무엇 하나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하던 누군가는 저의 점뿐만 아닌 눈도 달갑잖아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부터 저는 짝짝이 눈을 갖고 있었지요. 한쪽에만 쌍꺼풀이 져 있었기에 더욱 불균형해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타격감이 당시에는 없었는데요. 호기롭게 언젠가 두 쪽 다 쌍꺼풀 생기겠지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반복된 말은 무섭지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저도 모르게 자책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책은 또한 감추고자 하는 욕망을 틔워냈고요. 점은 희미하게 존재를 내세웠고 허전했던 눈에는 원래 있던 눈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으로 쌍커풀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잘 숨겨진 것 같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숨기기에는 영 틀러 먹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니 삐뚤삐뚤함은 역시나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때때로 사람 눈을 쳐다보는 것이 두려울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면 반사적으로 눈을 내리깔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추는 것은 결국 시늉에 지나지 않았지요. 의식적으로 숨기려고 해 봤자 애초에 숨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하고 제가 평생 갖고 가야 할 흔적임을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명쾌하고 쉬운 결론은 왜 항상 짜증을 동반하는지요. 거울 앞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확실히 장담할 수 없는 수십 번의 상상이 부풀고 우그러졌습니다. 그 간극 안에서 끝없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보았고 이것은 꽤나 홀연한 일이었습니다. 시야 가득히 흥건해지려는 찰나 날 선 소리가 들렸습니다. 출근을 알리는 알람입니다. 그제야 스스로 알량한 오기를 부리고 있었음을 실감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