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지 않아도 오가는 나날입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전혀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고 그런 감정만이 맴돌고 있는데요. 저의 하루는 즐거우나 버거우며 간간히 다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저는 하루 종일 손목시계를 차고 있기도 한답니다. 초침 소리가 좋아요. 손목을 귀에 갖다 대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여러 생각이 몽글몽글 솟아납니다.
생각은 체념적이기도 희망적이기도 하지요. 무력해질지라도 진심을 다하고 싶은데요. 퇴근길에는 두 번의 내리막을 만나고 네 번의 추락 욕구를 느낍니다. 높이 올라가서 어디든 뛰어들 마땅한 장소는 역시나 미정입니다. 뭐든 끊이지 않고 연속되고 있음을 무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는 듣기 좋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진심은 어디에도 없고 진심이 아닌 것들도 나름 똑딱똑딱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날이 갈수록 말을 정돈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빌려온 책은 반 정도 읽으니 어쩐지 소용이 없어진 듯합니다. 시린 공기는 마음을 뾰족하게 만들어 하루는 아무 말하지 않고 또 다른 하루는 혼자 주절거리게 한답니다. 오감이 들썩이고 이러나저러나 소통이 불가한 거여요. 그러든지 말든지 저는 어떻게든 살아갑니다.
스스로 떳떳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믿음이란 눈 깜짝하면 흩어질 수도 있답니다. 할아버지가 떠나고부터 시작되고 심화되고 완성되어 갑니다. 그는 마지막에 저더러 누구냐고 계속 물었고 저는 그저 시계의 침을 모조리 잘라낸 후 한 입에 꿀꺽 삼키어 멈춰진 시간 속에 갇히고만 싶을 뿐이었지요.
각별하게 주의해도 때때로 오해를 자초합니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는 핑계로 습관적으로 도망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꾸만 뒤를 확인하지요.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요. 내일 제가 어디에 있을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슬픔은 간데없고 아무래도 좋아졌습니다. 제가 보고 느끼는 것을 당신도 그대로 보고 느꼈다면 혼선은 없었을 거여요.
언젠가 저는 절대자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를 통해 그토록 바라왔던 완전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의 가능성을 믿지 않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지요. 다만 잘 짜인 틀은 분명 존재하고 그 안에서 본질로 착각되는 것과 현상이 서로 끊임없이 넘나드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답을 말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지는 않게 되었는데요. 세밀하게 들어가면 아프지만 멀리 떨어져서 돌아보면 다 괜찮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지요.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