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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천 Aug 02. 2024

왈터 어드만, 경북 북부 지방에 복음 전한 선교사

평양 신학교 성서학 교수로 활동

왈터 어드만 선교사 (어도만, 1877~1948)는 경북 북부 지방인 의성, 군위, 선산, 영천 등에 복음을 전하였다. 선교 후반기는 평양 신학교 성서학 교수로서 활동하면서 많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 


그는 1877년 미국에서 태어나서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구약 학자로 알려진 찰스 어드만의 동생이다.


1906년 북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대구 선교부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경북 북부 지방인 군위, 의성, 선산, 영천 지방 등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였다. 


1910년까지 의성에는 실업, 효선, 산운, 삼사 교회를 개척하고, 군위에는 상곡, 내리, 장군 교회, 영천에는 부현, 자천 교회, 선산에는 상림 교회 등이 그가 설립하거나 혹은 순회하며 사약한 교회이다.


또한 1914년부터 2년간 경상 노회장(9대 및 10대)을 역임하며 노회를 이끌었고, 1926년까지 경북 지역의 선교 일선에서 헌신하며 복음 전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1916년부터 평양 신학교 성서학 교수로서 강의하였고, 1918년부터 평양 신학교 간행물인 <신학지남>에 구약성서 연구에 관한 학술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1920년에는 <고등비평>이라는 논문을 번역하여 소개하였고, 그의 성서 해석의 핵심은 <구속사>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1923년 러시아 혁명 시기에는 자본주의 우위성을 강조하고 사회주의의 위험성을 언급했다.


그는 1926년 평양 선교부로 전입하여 평양에서 교수로 활동하다가 1931년 은퇴하였다.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내고 1948년 5월 펜실베이니아 저먼타운에서 소천하였다.


그의 부인 줄리아 윈은 1907년에 내한하여 대구 선교부에 부임하였다. 남편과 함께 선교 및 여성 전도에 헌신했다. 남편 어도만 선교사가 귀국할 때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2남 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의사가 되었고, 차남은 선교사로 일본 및 멕시코 등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포로 시대 후선지서 강해(1928년), 성경 총론(1934년), 주일학교 예배 순서(1922년) 등이 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산 위인들》(곽안련 역)이 1980년 번역되어 전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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