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윈 선교사 (Rodger Winn 인노절, 1882~1922)는 안동에서 안동 성경학교(현 경안 신학대학원 대학교)를 설립하여 성경 공부를 체계적으로 실시하여 사역자를 양성하는 등 안동 복음화에 기여한 선교사이다. 그러나 40세에 순교하여 안동 지역의 두 번째 순교한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1882년 미국 일리노이 주 게일스버그에서 태어나 캔자스로 이사해서 성장하였다. 엠피린 대학교와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했다.
1909년 부인 캐더린과 함께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로 파송되어, 그해 9월 내한하여 부산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1914년까지 부산 선교부 소속으로 부산과 밀양 등 경남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부산 동래의 원림 교회에서 시무하였고, 경남 웅천읍 교회 동사 목사, 밀양 교회 목사로 시무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1914년 선교지 분할 협정에 따라 부산 지역은 호주 장로교 담당 지역이 됨에 따라 경북 안동으로 이동하였다.
1914년부터 안동 인근 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1915년 예천 신전교회, 안동 중편 교회, 의성 대사 교회 설립에 협력하였다. 또한 경안 노회가 설립되면서 노회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안동에서는 웰번, 크로더스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었는데, 유교가 강한 안동에서 힘겼게 사역하고 있던 중 로저 윈 선교사가 합류하면서 큰 힘이 된 것이다.
특히 그는 성도들에게 성경 공부에 심혈을 기울이며 한국인 사역자를 양성하였다. 안동에서는 1909년 안동교회가 설립되었고, 1912년부터 여자 성경학교를 세워 여성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로저 윈의 부임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확대된 성경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20년부터 남자에게도 확대된 성경학교로 개편되었다. 그는 안동 성경학교의 교장이었고, 존 크로더스(권찬영) · 안더슨(안대선) 선교사는 교사로 동역하였다.
안동 지역을 <성경 기독교>라고 말하는 데 아마 1912년부터 시작된 성경학교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유교 정서가 깊은 안동 지역에서 선교사들은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대로 살아갈 것을 보여 주었기에 안동에 복음이 순조롭게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본다. 이것은 안동에서 성경학교를 위해 헌신한 로저 윈 선교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안동 남녀 합동 성경학교를 시작한 지 2년 후 1922년 이질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안동 땅에 와서 8년간 성경 공부에 힘쓰다가 40세 젊은 나이에 소천한 것이다. 그는 안동시 금곡동 경안고등학교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고 그의 묘비에는 <He is not dead but sleepeth>(그는 죽지 않았고, 단지 주님의 다시 오실 때까지 잠자고 있을 뿐이다.>가 기록되어 있다.
* 안동 땅에는 1908년 소텔 선교사가 최초 순교하였고, 13년 후 로저 윈 선교사가 2번째 순교하였다.
그가 소천 후 부인 캐더린은 안동을 떠나 평양 신학교 강사로 사역을 감당하며 3년간 머물다가 1925년 6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때 안동에서는 로저 윈을 기억하며 성경학교 건축을 위해 모금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캐더린은 미국 교회와 친지들로부터 기부금을 모금해 안동으로 돌아와 성경학교를 신축하였다. 1925년 준공된 이 성경학교의 <로저 윈 선교사 기념 성경학교>라고 명명되었다. 이 성경학교는 1948년 <경안고등성경학교>로 바뀌었고, 현재에는 <경안 신학대학원 대학교>로 발전하여 운영되고 있다.
그들에게는 2남 2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중 한 자녀인 헬렌은 1913년 11월 출생 후 10일 만에 사망하여 대구 동산병원 은혜의 정원에 안장되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