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엄마로 살기
한 아이의 엄마가 묻는다. “언제쯤이면 우리 얘가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이 끝날까요?. 이 아이는 (부유한 집안 출신의 딸인 엄마와 전문직 아빠를 둔 전형적인) 남들이 부러워하는 Upper-middle class집안의 아들이다. (Upper-middle class (중상류층)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소득, 생활 방식 및 사회적 지위 측면에서 중산층보다 높지만 상류층보다 낮은 사회 경제적 집단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편안한 생활 수준을 누리고 교육 및 직업 기회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들은 전문직종의 직업군에 속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중산층 또는 저소득층에 비해 재정적 안정성이 더 높다.)
“어제도 핸드폰 끄고 나가서 연락이 안 돼요. 일부러 안 받는 거예요” 자꾸 집을 나간다고 했다. 그동안은 그래도 밤늦게라도 집에 들어왔는데, 요 며칠 전부터는 새벽에 들어온다고 했다. 처음에는 소리 지르고 혼내고.. 어르고 달래고 별 수단을 다 해봤는데, 왠지 '벽 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라고도 했다. “이제 안 그러겠다고 얘기해요.. 그리고 학원 다녀오겠다고 나가서 학원도 안 가고, pc방에 가서 5시간 내내 있다가 밤에 들어와요. 그래도 pc방은 나은 거예요 더 심각한 것은 얘가 우리 집 앞 공원에서 혼자 앉아있다가 밤늦게 돌아올 때도 있다는 거예요..(자꾸 ‘잠수’를 타는 아이 때문에 위치추적(?)하는 ‘앱’인가(?)로 아이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앱에 나온 위치를 보니 우리 집 앞 놀이터인 거예요. 애가 왜 저러고 있는지 마음이 철렁했어요”
그래서 모든 학원을 끊고, 전 과목(이 엄마는 정말 전 과목을 다 시킨다) 집에서 하는 과외선생님으로 바꿨단다. “그랬더니 이게 더 가관이에요…. 얘가 선생님이 오셨는데 방문을 잠그고 안 나오는 거예요…. 나참.. 창피해서.. 어떨 때는 벽장에 들어가 있어요...” 선생님이 한 시간을 기다리다 집에 가시기도 했단다. 뭐라고 혼내면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엄마에게 같이 소리 지르기'였다고 한다. 밥도 안 먹고. 이게 아이의 ‘시위’, 이고 ‘반항’이었다고 했다. 중 2부터 시작된 이 전쟁은 학교 시험기간에는 극에 달했다고 한다. 시험 결과에 대해서 한숨 쉬는 엄마는 애가 타는데, 아이는 무감각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원수가 따로 없다. ‘아들이다 보니 다른 선배엄마들이 원래 그런다고, 그래도 엄마는 할 것은 해야 한다'라고 얘기들을 하다고 했다. 그래서, 여전히 학교 수행평가며, 과제물프린트를 학교에 가서 ‘직접’ 받아와서 어떤 수단으로 든 ‘대신’해서라도 제출했다고 얘기한다. 중학생이 이쯤 되면, 누구의 공부인지, 왜 공부를 시키는지를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말들을 쏟아낸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라며, 공부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은 이미 자녀양육을 “포기(?)”한 것이라는 듯한 말투였다.
중상류층 엄마의 양육의 특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자녀에게 ‘부지불식’ 간에 자녀에게 학습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취향”의 mothering 특징이다. “얘가 하도 단어 외우는 걸 싫어해서 제가 단어 한 개 외울 때마다 한 단어에 100원씩 주겠다고 했어요.. 며칠 열심히 하나 싶더니만, 그것도 별 소용없더라고요.." (만약 우리 아들, 딸에게 사용했더라면, 분명히 잘 먹혔을 텐데라며 옆에 있는 엄마들은 웃는다). 옆에 있던 다른 엄마가 ‘공부의 동기부여를 외부에서, 그것도 ‘금전적인 보상’으로 받는 아이들은 갈수록 ‘내재적 동기’를 상실한다’ 라며 핀잔을 주었다. 또한, 계속 그렇게 mothering을 하면, 목적과 수단을 구별하지 못하는 ‘분별력 없는 아이’가 되기 쉽다’라고도 얘기했다. “저도 잘 알죠.. 그래도 일단은 얘가 워낙 하기 싫어하니까, 이것이라도 시켜야지 별수 있나.. 해서 그냥 그렇게라도 해보는 거예요..”란다. 그다지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보였다.
이 엄마도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이었다. 부자 엄마의 딸은 똑같은 방식으로 부자 아들을 양육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받았던 그렇게 싫어했던 방식으로 똑같이 자신의 아들에게도 하고 있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고 얘기했다. 사실은 본인도 중, 고등학교 때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어서 엄마랑 싸우고 도망다니곤 했다며 너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스스로의 말처럼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과목별 ‘사교육’ 과목수가 주요 과목은 과목별로 2~3개씩이었다. 거기에 틈틈이 예체능까지 아이의 ‘공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까지 살뜰하게도 기획한 시간표였다. 아이도 중학교 1학년까지는 그래도 잘 협조(?)했다고 했다. ‘전교부회장’ 선거에 나가서 임원활동도 할 정도로 나름 ‘리더십’까지 완벽한 mothering으로 ‘흡족한 현재’와 ‘넉넉한 미래’가 기대되는 mothering으로 보였으리라 예상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엄마가 아들에게 가지는 ‘사랑’, 과 ‘애정’이었다. 보이기에는 이 엄마는 자신 자신의 ‘영화’를 위해서나, 명예를 위해서 아들에게 이렇게 mothering을 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는 점이었다. 아들에게 너무나 희생적이고 너무나 다정했다. 아들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나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살뜰’하게 아들을 mothering 하고 있었다. 딱히, ‘아들이 꼭 성공을 해야 한다’라던가, 아들이 좋은 대학을 가야 ‘엄마의 삶을 보상해 준다’라든가 하는 ‘자아실현형’의 mothering도 아니었다. (그렇게 여기기에는 이 엄마는 이미 가진 것이 너무 풍요로웠다). “공부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장사나 하라고 해도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이미 먹고살 걱정은 없다는 주위의 ‘시기’ 어린 시선도 아랑곳없는 말을 잘도 쏟아냈다. 그리고 이 말은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긴 시간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동안 아이와 ‘공부’때문에 전쟁을 치렀다고 했다. 학원선생님들에 의하면, 얘가 ‘컨닝’을 한다고 했단다. 다른 과목 선생님의 말로는 계속 잔다고도 했단다. 마치 매일의 일상인 듯, 또 아무렇지 않게 나열한다. 그럼에도 계속 학원은 가야 한다는 마무리도 잊지 않고 덧붙인다. 마치 학원은 ‘디폴트 값’인 듯 그 많은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과 엄마의 수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당연시했다. (사실, 한국 엄마의 대부분의 마더링은 아이들 사교육 뒷바라지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 엄마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는 “메가풍요”엄마였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무엇이든 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다 해줬다. 그것도 너무 많이. 학교의 어머니활동부터 시작해서 사교육도 끝판왕이다. 먹는 것은 또 어떠랴. 많은 엄마들이 부러워할 만한 주변에서 유명한 엄마였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그러나, 결국 소위. “사춘기”라는 담을 넘지는 못했다. “이제는 얘가(큰 아들이다) 동생들을 때리기까지 해요.. 난 아무 말 안 하고 ‘무시하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는데, 이 놈이 동생들을 때리니까 저도 또 소리를 지를 수밖에요” 이쯤되니 이 사랑은 지독한 ‘전쟁’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아들은 엄마와 둘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고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 엄마의 말이었다. 그때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그렁그렁한 눈을 나는 잊지 못하겠다. 정말로 그리워하는 듯. 잠시 아무 말 없이 침묵이 흘렀다. “너무 갑자기 변했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자녀양육의 모든 책임을 “사춘기”때문으로 종결시켰다. “애가 사춘기가 너무 심하게 와서요” 모든 게 다 사춘기 때문이란다.
그 “사춘기”의 불씨를 키운 것은 여지없이 “학업”성취와 관련한 엄마와의 갈등이었다. 결과를 엄마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그 아들은 학교시험이든 학원에서 보는 시험이든 모든 시험에서 30~50점을 받아왔다. 조금 자신 있는 과목에서는 그래도 70~80점을 받았다. 이 엄마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점수였다. 사실, 아이의 사교육 선생님들도 모두 납득이 안 가는 점수였다고 얘기했었다고 했다. (나중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이 아이에게 느낀 것은 이것은 아이의 실력이 아니었다고 보였다. 더 좋은 실력이 있는 아이였지만, 그냥 시험지에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더 우수한 아이였던 것은 사실인 듯했었다.) 이때부터였다고 했다. 아파서 시험을 볼 수 없겠다며, ‘단골’로 지각과 결석을 시작했다. “기다리면 나아지려니 했는데.. 언제까지일지 제가 우울증이 올 것 같았어요.... 이제는 아무 일만 안 생기면 좋겠어요” 아이가 요즘엔 제시간에 일어나서 학교 갈 생각도 안 한다고 했다. 학교가라는 ‘부탁’과 ‘협박’, ‘회유’의 반복이었다고도 말했다.
한편, 아이는 엄마와의 이 전쟁 속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 ‘여자친구’였다. “처음에는 자기가 모아 둔 돈으로 나가서 쓰더라고요.... 돈이 다 덜어졌는지 이제는 제 카드로 돈을 쓰더니, 저랑 싸우고 나서 제가 카드나, 용돈을 다 끊었더니… 요즘엔 ‘당근’에 물건을 팔아요. 그걸로 여자친구 선물 사주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요.. 제가 사준 한 번도 입지도 않았던 옷을 팔지를 않나, '애플워치'까지.. '당근'에서 물건을 팔아서 쓰더라고요..” 엄마의 반응이 너무도 이해가 갔다. “당근으로 물건 파는 걸 알게 된 건 아이의 카카오톡이 아이방 컴퓨터랑 연동되어 있어서 알게 되었어요. 차마 아무 말도 못 했던 건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아이가 알게 되면 ‘카카오톡’ 마저도 지워버릴까 봐 말도 못하고 그냥 얘가 뭘 팔고 있나만 보고 있어요” 소위, 요즘 십대 아이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여자친구의 ‘지갑’이 되어버린 아들이었다.
시간이 약이던가? 아니면, 그도 유명한 "사춘기”가 지나서였던가? 아니면, ‘공부’ 얘기를 안 하면서부터 이던가? 그것이 뭐라 이유를 찾기도 무색한 여러 날이 흘렀다 (원래 남의 집 아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다.) 몇 년 만에 만난 엄마는 왠지 편안해 보였다. 그렇게 지켜만 보면서, 오롯이 2년을 기다린 후, 다시 ‘평화’(?)는 찾아왔다고 했다. 이제 아들은 아주 ‘편안한’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집에서 더 이상 동생들을 때리지도 않고, ‘벽장’에 숨는 일도 없고, 엄마랑 단 둘이서 ‘초밥’를 먹으러 간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그래도 ‘살 것 같다’고 했다. 더 이상 ‘당근’에 물건을 팔지도 않는다고 했다. 다시 부유한(?) 여느 집 아들과 엄마처럼 그렇게 잘 지내는 듯 보였다. 주말에는 악기를 배우러 다닌다고도 한다. 바뀐 것은 우리나라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시험기간’에 바쁘지 않을 뿐이란다. ‘그냥 시험 보는 것 같아요. 공부를 하긴 하겠지만, 그냥 내버려두라고 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죠”란다. 기적처럼, ‘공부’를 뺀 ‘마더링’에서 엄마와 아들은 평화로 ‘대동단결’했던 것으로 보였다. 도통 공부도 안 할 것처럼 벽장에 숨던 아들이 ‘학원을 가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미 공부를 해서 성적을 내기에는 좀 늦어 보였지만, 그래도 엄마는 다시 한번 공부에 애를 써보려는 듯 보였다.) “애가 정신 차리면, 재수라도 하지 않을까요?”라며… “하겠다고 하면 언제든 밀어줘야죠”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