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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혜진 Jean Seo Oct 21. 2023

교차로(교육과 마더링)에  서있는 엄마들

한국은 경쟁이 치열한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자녀의 학업적 우수성과 직업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많은 엄마들의 ‘마더링’ 목표이다. 엄마들이 이러한 경쟁 환경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녀를 학원에 등록시켜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인텐시브 마더링'에서의 교육에 대한 강렬한 집중은, 울리히 벡(Ulrich Beck) 주장한 경력과 관련된 야망으로 장식된 가족에 대한 개념과 일치한다. 그는 노동 시장, 교육, 이동성, 그리고 직업 경력과 같은 개인화의 나선은 가정에 이중 또는 삼중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가족은 다양한 직업 관련 야망, 사회적 이동에 필요한 다양한 조건, 교육적 제약, 자녀에 대한 상반된 의무, 집안일의 단조로움 등으로 장식된 지속적인 개인의 역사가 된다는 논리이다.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유교주의적 가치관이 여전히 지배적인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동시대의 40~50대의 전업주부들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육아와 자녀교육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자녀의 교육적 성취를 위한 마더링과 희생을 모성애와 엄마로서의 삶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여긴다.





한편, 이러한 전제라면 한국의 '워킹맘'뿐만 아니라, 전업 주부들조차도 가족 내부 및 외부의 성별화(gendered)된 역할론에 따르는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적절한 협력과 타협이 가정과 사회에서 제공되지 않는다면, 감정과 신체적 노동으로 번아웃될 수밖에 없다. 특별히, 사회의 모든 기능과 구조이 '개인화'를 향해 나아가는 조건에서 생기는 모순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남편의 경제적 보호에 계속 크게 의존해야 하는 경제적 약자로서의 취약성은, 전업주부인 여성들이 자녀의 교육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더 큰 의무감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도록다. 이것은 그들의 교육에 대한 '취향'과 공교육과 사교육과 관련된 '가족 아비투스'(가족의 육아/교육 관행과 습성)에 반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엄마들이 자녀에게 최상의 교육을 받도록 온몸과 마음을 다하는 '인텐시브 마더링'을 사회적 규범인  순응한다. 하지만, 강도 높은 학습 일정에 부딪치는 자녀(특히,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와의 갈등에서 '감정노동'을 주체할 수 없다. 결국 입시를 필두로 하는 '교육'과 자녀와의 '관계성'이라는 딜레마를 마주하고 무너지기가 쉽다. 이처럼 사춘기에 들어서는 학령기 자녀의 학업 성취를 도모하는 압력이 가족 내에서 갈등으로 발현될 때마다, 모든 유형의 엄마들이 자녀의 교육적 필요와 자신의 직장 및 가정 업무와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한다.






한국사회에서 자녀의 성취를 엄마의 성취로 여기는 인식은 만연하다. 소위, ‘아카데믹 맘’이라는 이런 엄마들의 마더링(mothering)은 '사실 아무나 못한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동시에 많은 중산층의 전업주부들은 중, 고등학교 학교 성적부터 마지막 대학입시성적까지의 모든 과정 내내, 인텐시브 마더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에 ‘나 몰라라’할 용기가 없다. 자녀의 학업 성취가 엄마의 성취가 되는 한국의 양육 아비투스(관행)와 문화 속에서, 가정의 경제적 능력에 기대어 자녀의 대학 입학시험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허용하는 것이 사회분위기이다. 중요한 마더링 수단으로써, ‘가족 자본의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사교육의 ‘올인’으로 이루어 낸 자녀의 교육적 성취는 엄마의 명예로운 훈장이 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장장 10년에 걸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러한 입시를 위한 마더링은, 상대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마음껏(?) 사교육을 활용하지 못하는 엄마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무기력'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나 뉴스가 전하는 ‘마더링’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너무 자극적이고 극단적이다. 우리의 엄마들을 자녀를 자신의 영광을 위한 제물로 삼는 ‘마녀’로부터 시작해서 이에 동역(同役)하는 ‘사교육’의 ‘악마화’는 전형적이고 너무 흔한 소재이다. 실제 엄마들이 모두 다 스스로를 그렇게 능력 있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이 시대의 한국 엄마들은 그냥 ‘엄마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에 순응하는 ‘취약한’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자세히 보면 또 그런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이 실제 삶에서 없지는 않다는 점도 무시하지는 못하겠다. 그러고 보면, 극단적인 묘사로 보이는 드라마의 어느 한 단편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한국의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너무 일반적인 광경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경험에 기대어보아도 사교육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엄마들은 ‘대동소이’했다. 드라마에서처럼 누군가를 ‘살인’할 정도나, 결국에는 누구네 집 아이가 ‘자살’을 해버리는 ‘극적’ 장치가 없을 뿐이다.




스스로를 주변의 다른 엄마의 양육 방식과 비교하는 것은 기본이다. 더욱 ‘힘들게’ 내 아이들을 사교육에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다른 엄마들과의 교류도 중요한 일과 중 하나로 무시하긴 힘들다. 그러고 보면, 모든 아이들 공부와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들을 수 있는 ‘빨래터’ 역할이 바로 이 엄마들과의 모임이다. 거의 매일 통화는 기본이고, 주기적으로 모여서 입시설명회등 새로 생긴 학원 순례도 모두 업무처럼 열심이다. 이런 엄마들의 ‘친목 모임’과 같은 만남들도 결국 자녀의 교육을 목적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모든 스토리의 공통점과 한 가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의도치 않게’라는 단어이다. 맞다. 특별히, 우리 사회의 오랜 화두인 사회문제로서의 ‘교육’을 통해 보는 ‘마더링’은 너무도 ‘의도치 않게’ 많은 것에 영향을 주고 많은 가정에 뒤집을 수 없는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고 있었다. 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면, 우리 엄마들이 그래도 조금 여유 있지 않을까?

 



Unsplash의 Catalin 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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